더불어민주당이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안 즉각 발의’를 요청하는 국민 청원과 관련해 국회 청문회 실시 계획서를 강행 처리했다. 민주당은 또 김건희 여사와 김 여사 모친 최은순씨,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 39명을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했다. 민주당은 오는 19일과 26일 증인들을 법사위에 출석시켜 윤 대통령 탄핵 청원과 관련한 청문회를 열 예정이다.
국민의힘은 “역풍을 맞을 것”이라고 반발하며 표결에 기권했다. 국민의힘은 이번에 제기된 탄핵 청원 사유 5가지 대부분이 현재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국회법상 청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무리한 검사 탄핵으로 인한 역풍을 모면하고 이재명 전 대표에 대한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해 윤 대통령 탄핵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는 것이다.
민주당 소속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이날 법사위 전체 회의에서 윤 대통령 탄핵 청원과 관련한 청문회 실시 계획서와 청문회 증인·참고인 출석 요구 안건을 상정했다. 국회의 국민 동의 청원은 30일 안에 5만명 이상 동의를 얻으면 소관 상임위에 회부된다. 지난달 20일 시작된 윤 대통령 탄핵 청원은 이날 기준 130만여 명이 동의했다.
여야 법사위원들은 청문회 실시 계획서 채택 안건 표결 전 찬반 토론을 벌였다. 민주당 전현희 의원은 “(청원 동의자가) 130만명이 넘었다. 국민 분노를 상징한다”며 “법사위는 국민 명령을 받들어야 한다”고 했다. 반면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법률적·법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청원서 하나만 갖고 사실상 탄핵 소추를 위한 조사를 하겠다는 것은 헌법 위반”이라며 “이 때문에 문재인 전 대통령 탄핵 청원도 폐기된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권 때도 ‘대통령 탄핵’ 청와대 국민 청원 동의가 140만명이 넘었다는 것이다.
토론이 30여 분간 이어지자 정청래 위원장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반대하는데도 토론을 종결하고 청문회 실시 계획서 표결에 들어갔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항의하며 퇴장한 가운데 정 위원장은 청문회 일정안(7월 19일, 7월 26일), 증인·참고인 채택안 등을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정 위원장은 “채택된 증인은 불출석할 경우 국회 증언감정법에 따라 처벌될 수 있다”고 했다. 민주당은 19일 청문회엔 임성근 전 사단장 등 해병대원 순직 사건 관련 인사를 부르고, 26일엔 김건희 여사, 최은순씨 등 김 여사 관련 증인들을 부를 계획이다.
국민의힘에선 민주당의 이번 청문회가 검사 탄핵 소추안 발의에 대한 역풍을 모면하고 이재명 전 대표를 방탄하기 위한 국면 전환용으로 보고 있다. 앞서 민주당은 ‘이재명·민주당 수사’ 검사 4명에 대한 탄핵 소추안을 발의하고 ‘법사위 소환 조사’를 계획했다.
그러나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을 수사한 박상용 검사에 대한 카더라식 ‘음주 추태’ 의혹을 탄핵 사유로 넣었다가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그러자 윤 대통령 탄핵 청문회로 방향을 틀어 국면을 전환하려 한다는 게 국민의힘 주장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재명 전 대표에 대한 각종 재판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 추진으로 맞불을 놓겠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고 했다. 경북경찰청이 최근 임성근 전 사단장에 대해 불송치(무혐의) 결정을 내리고, 당대표 선거전이 진행 중인 국민의힘에서 김 여사 문자 논란이 불거지자 해병대원 순직 사건과 김 여사 관련 의혹에 다시 불을 지피겠다는 의도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이번 국민 청원에서 제기한 대통령 탄핵 사유도 법률상 근거가 없다고 했다. 청원에선 대통령 탄핵 사유로 해병대원 순직 사건 수사 외압, 김 여사 관련 의혹(명품 백 수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일본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부정,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등으로 전쟁 위기 조장,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투기 방조 등 5가지를 들었다.
그런데 국회법이나 청원법상 수사·재판이 진행 중인 내용의 청원은 접수할 수 없게 돼 있다. 해병대원 사건이나 김 여사 관련 의혹, 강제징용 판결 관련 사유는 현재 진행 중인 민·형사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탄핵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게 국민의힘 주장이다. 또 탄핵은 직무상 중대한 비위를 저지른 경우에 해당하는데, 도이치모터스 사건은 윤 대통령 결혼 전 벌어진 일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북한 도발에 대응한 대북 확성기 재개가 무슨 탄핵 사유가 되며,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의 경우 민주당이 ‘괴담 선동’을 하려다 실패한 것”이라며 “민주당이 수준 이하의 탄핵 선동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청원을 주도한 사람이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 등이 있는 전과 5범이라며 그 저의를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곽규택 의원은 이날 법사위 찬반 토론에서 “공교롭게도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8일 담화에서 ‘안보 불안’ ‘전쟁 분위기 고취’라고 한 것과 탄핵 내용(전쟁 위기 조장)이 일치한다”고 했다.
민주당이 계획한 대로 청문회가 열리더라도 김 여사 등 증인이 반드시 출석할 의무는 없다. 국회 증언감정법상 증인 출석 의무는 국회 안건 심의나 국정조사·국정감사와 관련해서만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정조사·국정감사 증인이 불출석하면 ‘동행 명령’을 내릴 수 있고 불응하면 국회 모욕죄로 고발이 가능하지만 청문회 증인은 동행 명령 대상이 아니다.
다만 김 여사 등이 청문회에 불출석할 경우 민주당이 국회 불출석죄 등으로 고발할 가능성은 있다. 국정조사·국정감사 증인은 바로 고발이 가능한데, 청문회 증인 고발은 재적 의원의 3분의 1 이상 연서(連署)가 필요하다. 국민의힘에선 “여야 합의도 없이 법률적으로 맞지도 않는 탄핵 청원 청문회를 열었기 때문에 고발하더라도 100% 무혐의가 날 사안”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은 “민주당의 ‘탄핵 청원 청문회’는 ‘탄핵 예비 절차’나 다름없다”며 “민주당의 검은 마수를 국민이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유상범 의원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 추진이 불러올 정치적 파장과 역풍은 물론 탄핵 정치를 탄핵해야 한다는 국민의 분노까지도 각오해야만 할 것”이라고 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대통령 탄핵 야욕을 생각보다 빨리 드러냈다. 위법적인 대통령 탄핵 소추 청문회는 당장 멈추라”며 “민주당은 입만 열면 탄핵을 18번처럼 외치는데, 이제는 부디 애창곡을 탄핵에서 민생으로 바꾸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