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선 의원 출신으로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의 원조 소장파로 꼽히는 정병국(66)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은 24일 본지 인터뷰에서 국민의힘이 처한 위기와 관련해 “보수의 가치는 멈춰 있지 않다”며 “보수의 위기는 변화하는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보수 정치인들의 위기”라고 했다. 정 위원장은 국민의힘이 20·21·22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에 내리 패배한 것은 “오로지 집권해야겠다는 권력 지향만 있을 뿐 내가 왜 정치를 하는지, 보수 정치의 가치가 뭔지 모르는 철학의 부재가 원인”이라며 “초·재선일수록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공부 모임을 하는 데서 정치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정 위원장은 신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관련해서는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만 바라보고 타협·합의에 이르면 윈윈할 수 있다”고 했고, 당내 계파 문제와 관련해서는 “친윤·비윤 의식하지 말고 능력에 따라 대해야 한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7·23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어떻게 봤나.
“원희룡·나경원·윤상현 후보 모두 의정 활동을 같이했던 중진들이다. 그럼에도 왜 입당한 지 7개월밖에 안 된 한동훈 대표보다 당원과 국민의 지지를 못 받았을까. 변화하는 시대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한 것 아닌가?”
–보수의 가치가 변화하나?
“환경 문제만 해도 보수는 성장을 중시했다. 그런데 이제 환경 보전이 더 큰 가치를 갖는다면 보수 정치인들도 변해야 하는데 과거에 갇혀 있다. 국민과 당원이 볼 때 정치권 밖에서 시대 흐름을 따라갔던 사람들과 기성 정치인들 사이에서 차이를 느끼지 않겠나.”
–이번 전당대회에서 친윤·친한 갈등이 불거졌는데.
“친윤·친한은 계파라고 볼 수 없다. 계파는 의리라도 있다. 지금은 어느 줄에 서면 다음에 내가 살까만 생각하는 각자도생, 줄 서기 정치, 패거리 정치만 있다.”
–한 대표는 친윤계와 어떻게 관계 설정을 해야 할까.
“오히려 한 대표가 친윤·비윤을 의식하지 말아야 한다. 언급도 해선 안 된다. 서로 줄을 잘 섰거나 못 섰거나일 뿐이지 그들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능력에 따라서만 대해야 한다.”
–전대에서 갈등을 빚은 나경원·원희룡 후보와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무조건 만나야 한다. 한 대표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그걸(갈등을) 마음에 두는 걸로 보인다. 승자가 먼저 푸는 게 맞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의 관계는 순탄할까.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바라보는 국민이 다를 리가 없다. 지향점이 같으면 하나가 될 수 있다. 지금은 당정 간에 서로 기대치가 낮아진 상황이다. 국민만 바라보고 조금만 타협하고 양보해 합의에 이르면 윈윈할 수 있다. 이번에 대통령과 잘 맞는 사람이 당대표가 됐다면 오히려 공멸했을지도 모른다.”
–한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어떻게 해야 하나.
“오늘도 용산에서 만찬을 하는데, 한 대표가 대통령 체면도 세워주고 대중에게 보이게끔 관계 개선 노력을 하는 게 좋다고 본다.”
–한 대표가 변화의 방향으로 수도권 외연 확장을 내걸었는데.
“우리 당의 경우 영남에선 공천받기가 어려워 5선 의원이 나오기 쉽지 않다. 반면 수도권은 당선이 어려워 열심히 해서 기반을 닦아 놓은 사람이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공천을 주기가 어렵다. 수도권에서 제일 중요한 건 국민에게 정치 개혁 어젠다를 던져주는 거다. 그러면 수도권은 저절로 따라온다.”
–청년 정치 학교를 8년째 운영하고 있다.
“5선을 하면서 느낀 점은 정치를 개혁하려면 당대표가 되거나 내가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패거리 정치를 해야 하더라. 혼자서 바꾸기는 어려웠고 결국 정치 후배들 교육에 올인하자고 생각했다.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김재섭 의원이 우리 청년 정치 학교 출신이다.”
–보수 정당은 청년층을 어떻게 끌어와야 하나.
“젊은 층이라고 해서 보수가 없지 않다. 청년들이 보수 정당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게 뭔지 알고 바꿔주면 된다. 공정 경쟁 등 시대에 맞는 보수의 가치를 재정립하고 그걸 당당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 유리한 쪽으로 말을 바꾸니 청년들이 등을 돌린다.”
–한나라당 시절 원조 소장파로 불렸다.
“16대 국회에 당선됐는데 빚만 10억원을 졌더라. 당시 ‘4당 3락’이라고 40억 쓰면 당선이고 30억 쓰면 낙선이라는 말이 있었다. 돈 선거를 개혁하고 싶었다. 의원 16명이 매달 50만원씩 갹출해서 ‘미래연대’라는 모임을 만들고, 국회 앞에 얻은 사무실에서 매주 수요일 아침 7시에 모여 공부했다. 거기서 지금의 선거 공영제 시스템을 만들었고, 17대 국회 때도 새정치 수요 모임으로 맥을 이어갔다.”
–소장파 시절 당 중진들에게 험한 소리도 들었다는데.
“의원총회에서 소신 발언을 하면 ‘왜 내부 총질만 하느냐’ 같은 욕을 숱하게 들었다. ‘노무현 탄핵’ 역풍이 불던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차떼기’ 속죄 차원에서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자며 당사를 국가에 반납하자고 했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우리끼리 한겨울에 한강변에 천막 당사를 치고 당내 투쟁을 했다. (처음 참여한) 의원들이 19명이었는데 마지막엔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 세 명만 남았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당사 출근을 막기도 했는데.
“박 대표가 전당대회 당선 후 국회 앞 당사로 첫 출근 하려 해 우리가 당사 현판을 떼다 밤새 쳐놨던 천막 당사에 가져다 붙였다. 그래서 박 대표가 천막 당사로 출근하게 됐다. 천막 당사 정신으로 공멸하려던 한나라당이 2004년 17대 총선 121석을 얻었다.”
–18대 국회 때는 한나라당 소장파들이 대통령 친형 이상득 의원의 불출마도 요구했는데.
“남경필·정두언 의원 등이 불출마 요구 성명을 냈는데도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이 의원 집 앞에 찾아가 기다리다 면전에서 불출마를 요구했다. 지금 생각해도 치열한 정치 투쟁이었다. 국민을 바라보고 정치를 할 때 이런 투쟁도 가능하다. 그런 처절한 과정이 있었기에 국민의힘 진영이 당시 재집권할 수 있었다고 본다.”
–차기 대선과 관련해 여권 일각에선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가 있는데.
“참 어리석다는 생각이 든다. 이재명이 없어지면 다음 대선은 국민의힘에 더 어려워질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정병국은
성균관대 사회학과 졸업 후 1988년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2000년 16대 총선 때 경기 양평·가평 선거구에서 당선됐고 20대 총선 때까지 내리 5선을 했다. 이명박 정부 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냈고, 2017년엔 바른정당 초대 당대표를 했다. 초재선 의원 시절 원희룡·남경필 등과 함께 ‘남·원·정’으로 불리며 보수 정당 소장파의 원조 격으로 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