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아래 오른쪽)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성준(아래 왼쪽)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언쟁을 벌이고 있다. 이날 해병대원 특검법안이 재의결에서 부결된 뒤 민주당 의원들은 본회의장 밖으로 나가 규탄 대회를 진행했고, 추 원내대표는 우원식(위) 국회의장에게 본회의를 정회하지 않은 채 야당 집회를 허용한 데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25일 소속 의원 170명 전원 명의로 이상인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부위원장)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헌법·법률에는 ‘직무대행’을 탄핵 대상으로 규정한 조항이 없으며, ‘직무대행’에 대해 탄핵안이 발의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민주당은 이상인 직무대행이 방통위원장 업무를 하고 있으니 탄핵 대상이란 입장이다. 법조계에서는 민주당이 헌법과 법률을 확대·유추 해석하면서 입법부 권한을 넘어 법률 해석권까지 마음대로 행사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래픽=이진영

민주당의 이번 탄핵소추안 발의는 방통위 기능을 정지시켜 MBC 경영진 교체를 막기 위한 차원이다. 현재 방통위는 김홍일 전 위원장이 탄핵 소추 직전에 사퇴하면서 이상인 직무대행 1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국회 인사 청문 절차가 진행 중인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를 윤석열 대통령이 그대로 임명할 경우 2인 체제가 되고 각종 의사 결정을 할 수 있게 된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진 재구성, MBC 경영진 교체 등이 이어질 수 있다. 민주당은 이를 막기 위해 ‘이상인 직무대행 탄핵’ 카드까지 꺼낸 것으로 보인다.

25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의원들이 팻말을 들고 대치하고 있다. 본회의장 입구 양쪽에 선 민주당 의원들은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해병대원 특검 법안 재의결에서 찬성 투표하라고 요구하는 현수막과 팻말을 들었다. 그 사이에 선 국민의힘 의원들은 민주당이 강행 처리하려 하는 ‘방송 4법’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과 팻말을 들었다. /이덕훈 기자

민주당의 이상인 직무대행 탄핵 소추를 두고 ‘자기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한 달 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의 민주당 간사인 김현 의원은 방통위원장 직무대행도 탄핵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통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한 법조인은 “민주당 스스로도 직무대행은 탄핵 대상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직무대행이 탄핵 대상이라고 헌법과 법률에 명시되지 않으면 무죄 추정의 원칙처럼 공직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게 법 해석의 원칙”이라며 “탄핵이 위법하게 남발되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은 또 이상인 직무대행 탄핵 사유로 부위원장 시절 김홍일 당시 방통위원장과 ‘2인 체제’에서 70여 건의 안건을 의결했다는 점을 들었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직무대행’ 탄핵인데 ‘부위원장’ 시절 일도 탄핵 사유로 들었다”며 “결국 방통위 기능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의도로, 헌법상 탄핵의 본질과 전혀 맞지 않는 탄핵 오남용”이라고 했다. 방통위가 의결정족수(방통위원 2인 이상)도 못 채운 채 위원장 직무대행 1인 체제로 운영되는 상황에서 이상인 직무대행이 탄핵 소추돼 직무가 정지되면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자가 조만간 임명되더라도 방통위는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이진숙 후보자, 이상인 직무대행

방통위법 6조는 ‘국회는 방통위원장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하면 탄핵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그 직무가 정지되는 탄핵 소추 대상으로 방통위원장만 명시한 것이다. 이 때문에 국회 과방위 민주당 간사인 김현 의원은 지난달 5일 탄핵 대상을 ‘방통위원장 또는 직무대행’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방통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날 이상인 직무대행 탄핵안을 발의하면서 “직무대행자는 방통위원장 권한 행사에 따른 책임도 진다”면서 직무대행도 탄핵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입법 불비(不備)를 정비하겠다며 직무대행을 탄핵 대상에 추가한 방통위법 개정안까지 발의한 민주당이 법이 개정되기도 전에 직무대행 탄핵에 나선 것은 자기모순이자 법을 무리하게 확대 해석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이 이 직무대행 탄핵에 나선 것은 다음 달 12일 임기가 만료되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교체를 막으려는 차원으로 보인다. 방통위는 MBC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를 임명하고, 방문진은 MBC 사장 임명권이 있다. 방문진 이사 9명은 여당 추천 6명, 야당 추천 3명으로 구성되는데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현 이사진이 이번에 교체되면 국민의힘 우위 구도로 바뀌게 된다.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자가 조만간 임명돼 방문진 이사 교체 절차를 마무리하면 MBC 사장이 교체될 수도 있다고 보고, 그가 임명되기 전에 이상인 직무대행을 탄핵 소추해 방통위 기능을 정지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위원장 포함 방통위원 5인 체제로 운영되는 방통위의 최소 의결 정족수는 2명이다. 민주당이 이 직무대행을 탄핵해 직무를 정지시키면, 윤석열 대통령이 이진숙 후보자를 조만간 임명하더라도 혼자서는 방문진 이사를 교체할 수 없게 된다. 이에 이 직무대행은 26일 국회 탄핵안 표결 전 자진 사퇴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거대 야당의 위법 부당한 탄핵 소추이지만 방통위의 기능 정지를 막기 위해 윤 대통령이 새 부위원장을 임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방통위원 5인은 대통령 지명 2인(위원장·부위원장)과 국회 추천 3인(여당 1인, 야당 2인)으로 구성되는데, 이 직무대행은 방통위법에 따라 대통령 지명 부위원장으로 임명됐기에 대통령이 곧바로 후임자를 임명할 수 있다.

민주당은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공직자에 대한 탄핵을 남발하고 있다. 작년 2월 핼러윈 참사 책임을 물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을 시작으로 이상인 대행까지 총 13건의 탄핵을 시도했다. 이달 초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 관련 사건을 수사한 검사 등 4명에 대해 탄핵안을 발의한 것과 관련해 비판 여론이 일자 민주당은 예고했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조사 절차를 미루고 있다.

☞방통위장 탄핵 관련 조항

헌법 제65조 1항: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 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방송통신위원회설치운영법 제6조 5항: 국회는 위원장이 그 직무를 집행하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직무대행에 대한 조항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