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의 첩보요원 신상 등을 유출한 혐의를 받는 정보사 군무원 A씨가 30일 구속됐다. A씨는 지난달 초 해외에서 신분을 위장해 활동하는 정보사 ‘블랙 요원’들의 본명과 나이, 활동 국가 등의 신상 정보와 정보사 전체 부대원 현황 등이 담긴 군사 기밀을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블랙 요원’은 신분을 위장해 해외에서 활동하는 비밀 요원이다. 대사관 파견 직원 등으로 근무하며 정보를 수집하는 ‘화이트 요원’과 다르다.
군 검찰과 방첩사령부는 A씨가 기밀 자료를 넘긴 대상을 중국 동포(조선족)로 파악하고 수사 중이다. 군은 군 고위직도 접근이 어려운 정보사 요원 신상 자료를 A씨가 어떻게 입수했는지, 정보사 내부에 조력자가 있는지도 규명하고 있다. 이날 정보사와 방첩사 등으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은 국회 정보위 여야 간사(국민의힘 이성권·민주당 박선원 의원)들은 “정보사는 사건 이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해외 파견 인원들의 즉각 복귀 조치, 출장 금지, 시스템 정밀 점검 조치를 했다”고 전했다. 두 의원은 ‘북한 해킹’이라는 A씨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도 했다.
그러나 군 검찰은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군형법상 간첩 혐의는 적용하지 못했다. A씨가 기밀을 넘긴 사람이 중국 국적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군형법상 간첩죄는 ‘적(북한)’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 간첩을 방조할 때, 적에게 군사상 기밀을 누설한 사람에게 적용된다.
현재까지 군은 A씨와 북한의 연계 정황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A씨에게 ‘간첩’(사형·무기 징역) 대신 형량이 상대적으로 낮은 군사 기밀 누설(10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혐의가 적용됐다. 군은 해당 조선족이 북한 정찰총국 정보원일 가능성, A씨가 넘긴 정보가 북한에 넘어갔을 가능성에 대해 계속 수사 중이다. 이 부분이 확인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A씨에게 간첩죄를 적용할 순 없다.
A씨 사건을 계기로 형법과 군형법에 규정된 간첩의 범위를 ‘적국(북한)’에서 ‘외국’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다시 나오고 있다. 2018년에도 군사기밀 100여 건을 중국과 일본에 넘긴 정보사 공작팀장에게 간첩죄를 적용하지 못해 징역 4년 선고에 그친 적이 있다. 조태용 국정원장은 지난 29일 국회 정보위에서 “간첩죄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간첩’ 조항 개정의 필요성은 야권에서도 제기돼 왔다. 2004년 민주당 최재천 의원을 시작으로 여야 구분없이 꾸준히 발의된 간첩법(형법·군형법 개정안)은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간첩죄 조항’을 바꾸는 형법 개정안이 4건 발의됐는데 이 중 3건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발의자였다. 그러나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 1소위의 민주당 의원들이 “간첩 행위의 범위나 국가 기밀 유출 행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 등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 처리되지 못했다.
22대 국회 들어서도 여야 의원들이 간첩법을 발의한 상태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 글을 통해 “이번에 꼭 간첩법을 개정해서 우리 국민과 국익을 지키는 최소한의 법적 안전망을 만들자”는 의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