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1일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에 이진숙 전 대전 MBC 사장을 임명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곧바로 이 위원장 탄핵소추안 발의 방침을 밝혔다. 이 위원장이 이날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와 KBS의 새 이사진 선임·추천안을 심의·의결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위원장은 이날 방문진 이사 9명 중 여권 추천 6명을 새로 선임했고, KBS 이사 후보로 7명을 추천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이진숙 위원장을 임명하면서 국민권익위원회 김태규 부위원장을 이상인 전 방통위원 후임 위원으로 임명했다. 초유의 ‘방통위원 0인’ 사태를 맞았던 방통위는 이로써 의결 최소 정족수인 ‘2인 체제’로 복원됐다. 방통위는 그간 방문진 이사 임기(8월 12일) 만료를 앞두고 새 이사 선임 절차를 밟고 있었으나 민주당의 이상인 전 방통위원 탄핵소추 추진과 이진숙 위원장 국회 인사청문회 절차 때문에 난항이 예상됐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날 취임한 이 위원장과 김 방통위원은 허익범 변호사, 김동율 서강대 교수, 손정미 TV조선 시청자위원, 윤길용 방심위 상송자문특별위원, 이우용 언론중재위 중재위원, 임무영 변호사 등 6명을 새 방문진 이사로 임명했다. 방문진 이사는 총 9명인데 이날 임명한 이사는 모두 여권 추천이다. 방문진 이사진은 문재인 정부 때 임명돼 현 야권 성향 이사가 6명이었지만 현 여권 성향 우세로 바뀐 것이다. 이에 민주당은 이 위원장 탄핵 카드를 꺼내 들며 압박에 나섰다. 그러나 이 위원장은 이날 취임식에서 민주당의 탄핵 압박으로 자진 사퇴한 이동관·김홍일 전임 방통위원장을 언급하며 “전임 위원장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부여된 책무를 최선을 다해 이행하겠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이날 아침 대통령실의 임명안 재가 방침 발표 전에 곧바로 방통위 사무실로 출근했다. 이어 이날 오후 5시 회의를 열어 방문진 이사와 KBS 이사 선임안을 논의했다. 임명된 지 8시간 만에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 절차에 돌입한 것이다. 방통위가 이같이 속전속결로 방문진·KBS 이사진 교체안 처리에 나선 것은 민주당이 이미 이 위원장 탄핵 추진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국회 과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이 위원장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키면, 이 위원장은 즉시 직무가 정지돼 방통위는 업무가 마비된다. 탄핵안이 발의되면 첫 본회의에 보고되고 24시간 이후부터 표결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이 위원장이 취임과 동시에 공영방송 이사 선임 의결에 나선 것이다.
민주당은 이 위원장 탄핵안을 1일 당론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과방위 민주당 간사인 김현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방문진·KBS 이사 후보들에 대한 서류 심사와 대면 면접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절차를 무시한 방통위원장은 반드시 탄핵되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은 탄핵 사유에 대해 “5인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에서 2인 체제로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안을 의결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라고 했다. 민주당 과방위원들 사이에선 이 위원장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제기된 MBC 법인카드 유용 혐의 등도 탄핵 요건에 해당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민주당은 1일 본회의에 이 위원장 탄핵소추안을 보고하고, 2일 또는 3일 본회의에서 탄핵안을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 의결은 이 위원장의 정당한 직무라 볼 수 있고, 구체적인 불법행위가 없다면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을 내리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이 위원장은 이동관·김홍일 전임 위원장들과 달리 사퇴하지 않고 헌법재판소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은 이날 이 위원장의 MBC 사장 시절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과 관련해 업무상 배임, 뇌물공여,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등 혐의로 고발도 했다. 민주당은 또 야당 단독으로 통과시킨 ‘방송 4법’에 대해서도 무한 추진 방침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