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국군 정보사령부 ‘블랙 요원’ 정보를 중국 동포(조선족)에게 넘긴 혐의로 구속된 정보사 군무원 A씨 사건을 계기로 ‘간첩죄’ 개정 요구가 커지고 있다. 군형법을 적용받는 군무원 A씨의 죄명은 형량이 무거운 ‘간첩’이 아닌 ‘군사기밀 누설’이다. 군형법상 간첩죄는 ‘적(북한)’과 연계가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아직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방국에 국가 기밀을 누설해도 간첩죄로 처벌하는 다른 나라와 큰 차이가 있다.

한국의 간첩죄 조항은 군형법과 형법, 국가보안법에 각각 규정돼 있다. 세 가지 모두 북한 또는 적국에 국가 기밀을 누설하는 경우에 간첩죄를 적용하게 돼 있다. 모두 6·25전쟁 이후 냉전 시대였던 1950~1960년대에 만들어 거의 바뀐 게 없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냉전은 끝났고 우방국에도 국가·군사기밀이 유출되는 시대”라며 “간첩죄 범위를 ‘적국’ 또는 ‘반국가 단체’에서 ‘외국’으로 넓히는 게 현실적”이란 지적이 나왔다.

그래픽=박상훈

1962년에 제정한 군형법은 ‘적’을 위해 간첩 노릇을 한 자, 적 간첩을 방조한 자, 군사기밀을 적에 누설한 자를 간첩죄로 처벌한다. 여기서 ‘적’은 북한으로 해석된다. 이렇다 보니 누설 상대가 북한만 아니면 간첩죄로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다.

지난 2018년 서울중앙지검은 중국·일본에 2·3급 군사기밀, 화이트 요원 정보 등을 넘긴 정보사 공작팀장 황모씨 등을 기소했다. 당시 황씨에게 군형법상 간첩 혐의를 적용하지 못하고 대한민국의 군사상 이익을 해한 일반 이적(利敵) 혐의를 적용해야 했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군형법상 간첩죄가 ‘북한과 연계’로 한정되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황씨는 징역 4년을 선고받았고, 이후 출소했다.

간첩죄 조항은 형법과 국가보안법에도 있다. 형법은 6·25전쟁이 끝난 해인 1953년에 만들었다.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 군사상 기밀을 적국에 누설한 자를 간첩으로 보는 조항이 이때 생겼고 현재도 그대로다. 공안 검사 출신 양중진 변호사는 “우리 사법 체계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형법에서 ‘적국’은 북한이 아니라 대한민국과 전쟁을 벌이는 외국 또는 외국 단체”라고 했다. 그는 “그러면 ‘적국’은 냉전 종식 이후 현실에서 사라진 개념인 셈”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1960년 국가보안법을 정비했다고 한다. 반국가 단체(북한)에 대한 정의, 반국가 단체에 국가·군사기밀 등을 유출하는 경우 처벌하는 ‘목적 수행’ 조항 등이 만들어졌다. 이 ‘목적 수행’ 조항은 형법상 간첩죄와 내용이 거의 같다. 대표적 간첩 사건인 2006년 일심회, 2011년 왕재산 사건 등의 피고인들이 국가보안법상 목적 수행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와 같은 간첩죄 처벌 체계에 대해 한 법조인은 “간첩죄 입증이 매우 어렵다”며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적국’이나 ‘북한’과 연계됐을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야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2004년부터 형법상 간첩 조항의 ‘적국’을 ‘외국’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에서 번번이 통과되지 못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 검토 보고서는 “우방국 간에도 치열한 정보 수집을 할 만큼 다원화된 현대의 국제 환경에서 국가의 외적 안전이 반드시 적국에 의해서만 침해받는 것이 아니다”라며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간첩 행위의 범위나 국가 기밀 유출 행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 등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고, 법무부와 법원행정처 간에도 의견 차가 있어 법 개정이 안 됐다.

최근 여야는 21대 국회 때 간첩 관련 법 개정안을 처리하지 못한 것을 놓고 상대방을 탓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현행 간첩 조항은 문제가 있다”는 인식은 공유하고 있다. 지금 22대 국회에서도 여야 의원들이 관련 법안을 발의하고 있다. 김성천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여야가 국익을 생각한다면 심도 있게 논의해 국기 기밀의 범위를 정하고, ‘적국’을 ‘외국’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