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두 쪽 경축식’ 우려가 현실화됐다. 신임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이유로 정부를 ‘친일’로 몰고 있는 광복회와 더불어민주당은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에도 정부 주최 경축식 불참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이에 따라 15일 정부 공식 행사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광복회와 야당 행사는 서울 효창공원에서 따로 열린다. 국민 모두가 독립운동을 기리고 광복을 축하하는 통합의 마당이 돼온 광복절 행사가 정치 세력별로 갈라져 열리는 것은 초유의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독립유공자 초청 오찬 행사를 열었다. 윤 대통령은 “독립 영웅들께서 남겨주신 독립의 정신과 유산이 영원히 기억되고, 유공자와 후손들이 합당한 예우를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자유의 가치를 발전시켜 온 선조들의 뜻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했다.
이 자리에는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의 5대손이자 파리올림픽에 유도 국가대표로 출전해 은메달을 획득한 허미미 선수, 김구 선생의 손녀사위인 김호연 빙그레 회장, 독립운동가이자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선생의 손녀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 이동일 순국선열유족회장, 명노승 매헌윤봉길기념사업회 이사장, 김재실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장, 정수용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장 등이 참석했다. 하지만 독립기념관장 선임 문제로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는 이종찬 광복회장은 불참했다.
이 회장은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을 ‘뉴라이트’ ‘친일’로 규정하고 임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김 관장이 “뉴라이트도 아니고, 임시정부를 부정하거나 건국절 제정을 옹호한 적도 없다”는 취지로 여러 차례 해명했고, 정부도 같은 입장을 밝혔지만 이 회장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민주당 등 야당들은 광복회의 친일 공세를 확대·재생산하고 나섰다. 박찬대 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당 회의에서 독립기념관장 임명 등을 문제 삼으며 “윤석열 정권의 역사 쿠데타” “정신적인 내선일체(內鮮一體)” “역사상 최악의 친일 매국 정권”이라고 했다. 민주당, 조국혁신당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뉴라이트 독립기념관장 임명, 친일 매국 윤석열 정부 규탄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김구 선생, 안중근·윤봉길 의사, 유관순 열사가 그려진 입간판을 세워 놓고 만세삼창도 했다. 김구 선생 증손자인 김용만 민주당 의원 등 국회 정무위 소속 야당 의원들도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을 항의 방문했다.
170석을 가진 민주당은 “역사 왜곡과 대일 굴종 외교를 저지하기 위한 법안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민주당 이건태 의원은 친일 행위를 선전하거나 이에 동조한 사람을 공공기관 직원이나 자문위원으로 임명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같은 당 박용갑 의원은 독립기념관장을 국회 탄핵 소추 대상에 포함하는 ‘독립기념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국정 흔들기에만 몰두하는 민주당의 행태가 진정한 매국”(곽규택 수석대변인)이라고 반발했다.
광복절 경축식은 매년 정부 인사, 국회의장, 여야 지도부와 의원들, 독립운동 단체 및 독립운동가 유족, 종교계, 주한 외교사절단 등 2000여 명이 참여하는 국민 통합 행사로 거행돼왔지만, 이번에는 광복회를 비롯해 민주당·조국혁신당 등이 불참한다. 야당 중엔 유일하게 개혁신당의 허은아 대표가 정부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통상 광복회장이 맡던 경축식 연설은 이동일 순국선열유족회장이 대신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동일 회장은 1910년 한일 병탄에 항거하며 27일간 단식하다 순국한 이중언 선생(1850~1910)의 증손자다.
광복회 등 56개 독립운동 단체는 같은 시각 정부 행사장과 3.5km 떨어진 효창공원 내 백범기념관에서 따로 광복절 기념식을 연다. 광복회는 정당·정치권 인사를 일절 초청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이 기념식에 참석할 계획이다. 민주당 출신인 우원식 국회의장은 정부 경축식, 광복회 행사 모두 참석하지 않고 국립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을 별도로 참배하겠다고 했다. 기념식과 별개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정부를 규탄하고 독립기념관장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