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국회에서 열린 ‘의대 정원 증원에 따른 의과대학 교육 점검 연석 청문회’에서 의과대학 정원배정심사위원회 회의록 파기 논란이 벌어져 청문회가 일시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문정복 의원과 국민의힘 조정훈·김미애 의원, 교육부 오석환 차관, 심민철 인재정책기획관이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1509명 늘린 데 따른 의대 교육 여건 변화를 점검하겠다며 국회가 연 청문회가 증원분을 대학별로 배분한 ‘의과대학 정원배정심사위원회(배정위)’ 회의록 파기 논란으로 뒤덮였다. 야당은 정부가 중대한 의사결정에 관한 기록을 불법적으로 파기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배정위는 법적으로 회의록을 남길 의무가 없는 기구이며, 자료가 유출되면 사회적 갈등을 촉발할 수 있어 자료를 파기했다고 했다.

국회 교육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는 16일 ‘의대 정원 증원에 따른 의과대학 교육 점검 연석(連席) 청문회’를 열었다. 더불어민주당 문정복 의원은 “배정위원장을 청문회 증인으로 부르지 않는 조건으로 ‘배정위 회의 내용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교육부가 약속했었는데, 제출한 자료가 미흡해 보완 자료를 요청했더니 교육부가 ‘배정위 참석 위원 전원의 동의를 구해 배정위 협의 내용을 파기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배정위 협의 내용이 배정위 운영 기간(3월 15~18일) 중에 이미 파기됐다고 설명했다. 교육위원장인 민주당 김영호 의원은 “정부는 당연히 배정위 회의록을 공공기록물로 남겨 놨다가 보존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정부가 명백히 공공기록물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의대 증원을 둘러싸고)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배정위 자료가 유출되면 갈등을 촉발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실무진의 우려가 컸다”고 했다. 민주당 강선우 의원은 “국회의원이 갈등을 유출하려고 민감 자료를 유출하는 집단이냐”며 이 부총리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여야 의원들과 정부 관계자들이 ‘회의록’ ‘협의 내용’ ‘자료’ 등의 용어를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뒤섞어 쓰면서 혼란이 가중됐다. 이날 청문회와 정부 설명을 종합하면, 교육부는 지난 3월 3차례 진행한 배정위 회의가 끝난 때마다 회의 내용을 요약정리한 문서를 만들었다. ‘회의의 진행 과정이나 내용, 결과 따위를 적은 기록’(표준국어대사전)이라는 점에서, 이 회의 내용 요약정리 문서는 ‘회의록’이다.

하지만 배정위원들이 회의에서 한 말을 그대로 받아적은 ‘속기록’은 애초부터 작성되지 않았다. 야당 의원들은 정부에 이런 속기록, 또는 적어도 배정위원 각각이 한 말이 구분돼 있는 문서를 달라고 요구하면서 이를 ‘회의록을 달라’ ‘원자료를 달라’고 표현했다.

교육부는 야당 의원들이 요구하는 속기록이나 그에 준하는 자료는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오 차관은 “파기했다”고 말했고, 야당 의원들은 이를 배정위 회의 중에는 속기록이 작성됐으나 회의를 마치면서 이를 교육부가 파기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오 차관은 오후에 계속된 청문회에서 “(배정위) 회의 진행 과정에서 참고 자료를 활용한 뒤 파쇄했다는 보고를 받아 (’파기했다’고) 답변을 드렸는데, 정리해보니 제가 혼동을 일으킨 것 같다”고 사과했다. 당시 파기한 것은 배정위 회의에 활용된 ‘참고 자료’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3차례의 배정위 회의 내용을 총 12쪽 분량으로 요약한 문서는 의원들에게 제출했다. 그러면서도 오 차관은 “배정위 ‘회의록’은 작성되지 않았고, ‘회의 결과를 정리한 자료’를 작성해 제출했다”고 말해, 또다시 혼란을 일으켰다. 속기록 형태가 아닌 문서는 ‘회의록’이 아니라는 식으로, 임의로 구분해 말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한편 이주호 부총리는 “배정위는 법정 기구가 아니라 장관의 자문을 위한 임의 기구”라며, 공공기록물법상 회의록을 반드시 작성해야 하는 기구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 부총리는 “(의대가 아닌 다른 전공 정원 배정 등) 유사한 배정위의 경우에도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고 했다.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은 “사회적 관심이 매우 높고 국민 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이면, (참고 자료일지라도) 파쇄하고 아무런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과연 그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나 국민들이 (정부의 의사결정을) 신뢰할 수 있게 하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