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회장 “친일 사관 물든 역사 인식 판쳐, 사회 혼란” -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광복회가 주최한 제79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정부 주최 광복절 경축식 불참을 선언한 광복회와 독립운동단체, 민주당 등 야당 관계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15일 오전 79주년 광복절 경축식이 열린 서울 세종문화회관. 신임 독립기념관장 임명에 반대하며 불참한 이종찬 광복회장을 대신해 기념사를 하게 된 이동일 순국선열유족회장이 윤석열 대통령 등 2000여 명 앞에 섰다. 그는 “선열이 물려주신 대한민국, 우리가 더 나은 미래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자. 갈등과 반목을 이제는 끝내자”고 했다. 이 회장은 한일 병탄에 항거하며 단식하다 순국한 이중언 선생 후손이다.

같은 시각 세종문화회관에서 3.5㎞ 떨어진 용산구 효창공원 백범김구기념관에선 광복회 주최로 또 다른 광복절 기념식이 열렸다. 광복회원 등 독립운동가 후손, 야당 의원을 포함해 500여 명이 참석했다. 연단에 오른 이종찬 회장은 “최근 진실에 대한 왜곡과 친일 사관에 물든 저열한 역사 인식이 판치며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며 “우리의 역사의식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물러설 수 없는 투쟁의 일환으로 광복회원들의 결기를 보여줘야 했다”고 했다. 정부가 ‘건국절’을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음에도 이 회장은 “건국절을 만들면 얻는 것은 단 하나,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게 ‘건국의 아버지’라는 면류관을 씌어주는 일”이라며 “독립운동을 폄훼하고 건국절을 들먹이는 이들이 보수를 참칭하고 있다. (광복절 다음으로) ‘통일절’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이 회장은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을 ‘뉴라이트’라고 비판하며 광복회장으로는 처음으로 정부 행사에 불참했다. 김갑년 광복회 독립영웅아카데미 단장은 축사에서 “친일 편향의 국정 기조를 내려놓고, 국민을 위해 옳은 길을 선택하라”며 “그럴 생각이 없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십시오”라고 했다. 참석자들은 “타도 윤석열”을 외쳤다.

효창공원 인근서 행진 - 15일 서울 효창공원 근처에서 시민 단체 관계자들이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 촉구 행진을 하고 있다. /뉴스1

정치권도 둘로 갈라졌다. 한동훈 당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와 의원들,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정부 공식 경축식에 참석해 함께 만세삼창을 외쳤다. 한 대표는 행사 후 기자들과 만나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정부 경축식에 불참한 데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독립기념관장 인사에) 이견이 있으면 여기 와서 말할 수도 있는데 불참하면서 이렇게 나라가 갈라지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너무 부적절하다”고 했다. 민주당 출신인 우원식 국회의장은 광복회가 불참했다는 이유로 정부 주최 경축식에 참석하지 않고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고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별도로 오찬을 했다.

민주당, 조국혁신당 등 야당 의원 등 100여 명은 광복회 행사가 열린 효창공원에 집결했다. 광복회는 정치인은 받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박찬대 민주당 당대표 대행 겸 원내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 등이 맨 앞줄에 자리 잡았고, 이종찬 회장과 악수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기념식이 시작되기 전 백범김구기념관 앞에서 ‘친일·반민족 윤석열 정권 규탄 대회’도 열고 “윤석열 정권은 나라를 통째로 일본과 친일 뉴라이트에게 넘기려는 모든 음모를 당장 중단하라”고 했다. 이어 “제2의 독립운동에 나서겠다는 각오로, 시민사회와 함께 범국민적 저항운동을 전개하겠다”고 했다. 조국 대표는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별도 기자회견을 열고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이냐, 아니면 조선총독부 총독이냐”며 “친일 주구와 밀정들을 하나하나 색출해 국민께 고하고, 친일 밀정 정권 축출에 온 힘을 다하겠다”고 했다.

세종대로서 “자유 민주주의 수호” - 15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자유통일당 등 보수 단체 회원들이 ‘8·15 국민혁명대회’를 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거리에서도 정치 성향별로 갈라진 집회가 열렸다. 자유통일당은 이날 오후 1시부터 서울 세종대로 200여m 구간 전 차로를 점거하고 ‘8·15 국민 혁명 대회’를 열었다. 경찰 추산 2만여 명이 모였다. 한 손엔 태극기, 다른 손엔 성조기를 든 참가자들은 “자유 민주 체제 수호” “한·미·일 공조 지지” 등 구호를 외쳤다. 오후 3시 30분 서울역 광장에선 ‘천만인 운동본부’ 측 5000여 명이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광복절 행사마저 볼모 잡은 이종찬 광복회장은 즉각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우리공화당, 자유우파유튜브연합 등이 결성한 ‘자유우파총연합’ 1000여 명은 “건국 자유 정신 계승” “자유 민주주의 수호” 등 구호를 외치며 용산 대통령실 방향으로 행진했다.

야권 성향 민족문제연구소는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입구에서 ‘독립기념관장 임명 취소’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주최 측 추산 500여 명이 참석해 “친일·친독재 세력이 활개치는 세상이 다시 왔다” “독립기념관장에 친일 극우 인사를 임명했다” 등의 주장을 펼쳤다. 이들은 삼각지역 방면으로 2.8km가량 행진하며 “친일 관장 임명 철회” “매국 정권 규탄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 근처에선 광복절 기념식과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사퇴 시위가 동시에 진행됐다. 천안시는 이날 독립기념관 주관 행사가 취소되자 시(市) 주관으로 기념식을 열었다. 그러자 같은 시각 700여m 떨어진 독립기념관 입구 분수광장 일대에서 민주당과 시민 단체 관계자 등 500여 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뉴라이트 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독립 만세를 외쳤다. 강원도의 광복절 경축식은 광복회원들의 항의로 파행했다. 강원대 춘천캠퍼스에서 열린 행사에서 김진태 강원지사가 “1948년 건국을 부인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하자, 광복회 측 인사들이 강하게 항의하면서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