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8·18 전당대회를 하루 앞둔 17일, 이재명 대표 팬 카페 ‘재명이네 마을’엔 “정봉주를 밀어내기 위해 이언주에게 표를 몰아주자”는 글이 여러 개 올라왔다. 이번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에선 후보 8명 가운데 5명을 뽑았다. 이때까지 정봉주 전 의원은 누적 득표율 3위, 이언주 의원은 6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 의원을 당선권에 올려 친명과 각을 세우는 정 전 의원 당선을 막자는 ‘개딸(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층) 궐기령’이 떨어진 셈이다. 일부 친야 성향 유튜버도 “이언주를 뽑아야 정봉주가 탈락한다”고 홍보하며 거들었다.
그럼에도 민주당에서 정 전 의원 낙선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경선 초반 1위에 오르고 각종 구설 속에서도 막판까지 상위권을 지키는 등 나름 ‘저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투표함을 열자 이언주 의원에 득표율 0.6%포인트 차로 패하면서 최고위원에서 탈락했다. ‘정봉주를 떨어뜨리자’는 막판 개딸들의 응집력이 예상을 뛰어넘은 것이다.
경선 초반만 해도 정 전 의원은 개딸들의 ‘타깃’이 아니었다. 오히려 ‘윤석열 탄핵’ 같은 선명성 있는 구호를 앞세워 개딸의 환심을 샀다. 초반 현역 의원들을 제치고 1위로 치고 나간 것도 개딸들의 지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정 전 의원이 7월 20~21일 제주, 인천, 강원, 대구·경북에서 실시된 지역 순회 경선에서 연이어 1위를 하며 ‘수석 최고위원’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친명계 내부에선 “대표 옆자리에 앉는 ‘수석 최고위원 정봉주’는 부담스럽다”는 말들이 돌기 시작했다. 민주당이 해병대원 특검법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 ‘목발 지뢰’ 발언으로 논란이 됐던 정 전 의원이 지도부 전면에 나서는 건 이 대표에 도움이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차기 대선을 목표로 중도층 민심을 잡는 게 중요한 이 대표로선 강성인 정 전 의원과 매일 카메라 한 화면에 잡히는 게 불리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런 가운데 이 대표는 자기 유튜브에 최고위원 경선 3~4위에 머물던 김민석 의원과 함께 출연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고 했다. 개딸들은 이를 “명심은 김민석”이라고 받아들였다. 이후 7월 27일~8월 4일 부산·경남·울산, 충청, 호남 경선을 거치면서 정 전 의원은 1위를 김 의원에게 내줬다.
이때까지도 개딸들이 정 전 의원을 ‘비토’까지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난 8일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이 SBS라디오에서 정 전 의원이 ‘이재명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는 발언을 했다고 전하면서 기류는 바뀌었다. “정봉주가 그럴 리 없다”는 비호파, “정봉주를 탈락시켜야 한다”는 반대파로 갈려 논란이 벌어졌다. 그런데 정 전 의원은 해당 발언을 한 게 맞다고 시인했다. 12일엔 기자회견을 열어 “당 내부의 암 덩어리인 ‘명팔이(이재명 팔이)’를 잘라내야 한다”고 했다. 극소수의 이 대표 측근이 문제라며 국면 전환을 시도한 나름의 승부수였다. 하지만 이로 인해 ‘정봉주가 이재명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개딸들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정 전 의원이 국민 여론조사에서 이 대표에 대한 비호감이 큰 무당층 환심을 사기 위해 정략적으로 ‘명팔이’ 발언을 했다는 말도 퍼지면서 개딸 여론은 완전히 돌아섰다. 최고위원 경쟁자들도 모두 정 전 의원을 비판했다.
개딸들이 ‘정봉주 낙선’을 위해 결집하면서 정 전 의원은 17일 서울 경선을 거치며 3위로 한 계단 더 떨어졌고, 18일 최종 집계에선 6위까지 밀려 탈락했다. 18일 최종 집계된 정 전 의원 성적은 권리당원 투표 5위, 여론조사 6위, 대의원 투표 7위로 종합 6위였다. 정 전 의원은 통화에서 “이 대표 측근들이 경선 기간 내내 전방위로 조직적인 방해를 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