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지난 25일 고위 당정 협의회에서 정부에 요구한 2026년도 의대 증원 유예가 “국민 여론과 민심”이라고 했다. 내년도 1497명의 의대 증원 계획은 유지하되 2026년 증원은 보류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당 지도부의 ‘투 톱’인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러한 유예안에 대해 “한 대표와 사전에 상의한 적이 없다”고 했다. 정책을 총괄하는 김상훈 정책위의장도 “확실히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 한 대표는 당내 의원들의 민의를 수렴하는 의원총회도 열지 않았다.
과연 2026년도 의대 증원 ‘0′은 민심일까? 고령화 추세 속에 의대 정원은 27년간 1명도 늘지 않았다. 여전히 국민 60~70%가 의대 증원에 찬성한다고 정부가 강조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의사들과의 갈등을 줄이고 의료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해 달라는 것이 대체적인 여론일 것이다. 정부도 의료계가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면 2026년도 정원을 논의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 대표는 증원 유예를 주장하며 의료 현장의 혼란이 극심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반면 정부는 29일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전국 응급실의 각종 수치와 통계를 들며 의료 대란 우려는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고 했다. 인식 차가 큰 만큼 한 대표가 보건복지부 장관 등과 직접 토론하며 타협점을 찾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대표는 “이미 들은 얘기”라며 이날 정부 보고에 불참했다.
정치는 유무죄 중 양자택일하는 수사처럼 증원과 유예 중 하나를 고르는 게 아니다. 갈등을 조정해 타협안을 마련해야 한다. 한 대표가 집권당 대표로서 이러한 ‘정치’를 했는지는 의문이다. 권성동 의원은 “설득을 해야지 말 한마디 툭툭 던진다고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 대표가 정책 변경보다는 윤 대통령과의 반대 의견을 부각하는 데 더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한 대표가 ‘국민 눈높이’에 따라 당내외 민심을 종합해 타협안을 제시했다면 지금처럼 정부가 한 대표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지는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