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당의 민생 공통 공약을 추진하기 위해 협의 기구를 운영하기로 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1일 국회에서 세 시간여에 걸쳐 회담한 뒤 내놓은 ‘공동 발표문’ 1번 항이다. 여덟 항목 중 유일하게 구체적인 합의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제일 앞에 내세웠을 것이다. 금융투자소득세와 의정 갈등, 가계 부채 등을 언급한 나머지 일곱 사항에는 ‘검토’ ‘논의’ ‘협의’ ‘강구’ 등의 꼬리표가 달려있다.
한 대표는 이튿날 열린 국민의힘 최고위원 회의에서 “양당 민생 공통 공약을 추진하기 위한 협의 기구는 패스트트랙을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도 민주당 회의에서 “국회에서 입법하거나 또 정책 입안을 하는 것과 관련해 상당히 큰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극단 대치가 이어졌던 여야 관계를 고려하면 ‘민생 협의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다만 이 발표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것은, 국회에는 이미 상임위원회라는 협의 기구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여야 의원들이 국회에서 기획재정, 국토교통, 보건복지 등 17개 상임위를 통해 법안을 토론하고 심사하도록 세금으로 지원한다. 그러나 22대 국회는 특검·탄핵·청문회 등을 앞세운 정쟁에만 몰두하면서 민생 현안을 내팽개쳤다. ‘딥페이크 성범죄’ 소관 상임위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는 개원 후 약 145시간에 걸쳐 21차례의 전체 회의를 열었는데 딥페이크 문제는 이 중 24분만 다뤘다.
국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별도 협의 기구는 애초에 필요 없는 것이다. 여야가 지금까지처럼 상대를 협상 파트너가 아니라 ‘적’으로 여기고, 국익이 아니라 정파 이익을 먼저 챙긴다면 협의 기구 100개를 만들든 무슨 소용인가. 지금 국회엔 AI 기본법, 반도체 특별법 등 주요 법안들이 계류돼 있고, 금투세와 의정 갈등 등 해결이 시급한 현안도 산더미다. 앞으로 ‘양당 민생 공통 공약을 추진하기 위한 협의 기구를 만들기 위한 협의 기구’ 따위가 추가로 나올 일 없이 의원들이 본분을 다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