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13일 핵탄두를 만드는 데 쓰는 고농축우라늄(HEU) 제조 시설을 공개한 데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닷새가 지난 18일 오전까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민주당은 이 기간 논평을 14건 냈지만 북한의 불법 핵 개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김건희 여사를 비난하는 논평이 5건이었고, 윤석열 정부의 국정 전반과 의정 갈등 대응을 비판하는 논평이 각각 3건이었다.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주요 당직자들이 개별적으로 북핵 문제를 거론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민주당은 18일 저녁에야 한민수 대변인 명의로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 재개를 규탄한다”는 서면 논평을 내, 북한의 HEU 제조 시설 공개를 여러 도발 사례 가운데 하나로 언급했다.
북한이 곳곳에 숨겨둔 HEU 시설은 2019년 미·북 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핵심 이유였다. 북한은 영변 핵 시설 폐기와 대북 제재 해제를 교환하기를 원했고, 당시 문재인 정부도 미국에 이를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로 적극 홍보했다. 하지만 영변 이외 HEU 시설을 폐기하라는 미국 요구를 북한이 거부해 회담은 결렬됐다. 이번 HEU 시설 공개로 북한이 지속적으로 핵 개발 능력을 키워왔음이 드러났지만, 민주당은 사실상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북한의 HEU 시설 공개 다음 날 글을 올려 “북한이 우라늄 농축 시설을 대놓고 공개한 것은 과거 대북·대중 굴종 외교가 만들어낸 현실”이라며 “그래서인지 민주당은 북한 얘기만 나오면 평소와 달리 아주 과묵해진다”고 했다. 한 대표는 이어서 “북한 핵 위협에 대응할 초당적 협력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당 일각에선 자체 핵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필요 시 신속하게 핵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기술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고 했다. 나경원 의원은 “자체 핵무기 개발까지 옵션(선택지)을 확장해 국익을 주도적으로 수호해 나가야 한다”고 했고, 윤상현 의원은 “미국 전략핵잠수함 전개를 상시화하는 토대 위에, 미국과 실질적 핵 공유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