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단독 처리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한 김건희 여사 관련 특검 법안이 4일 국회 본회의 재표결에서 부결됐다. 지난 2월 말 김 여사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밝히겠다며 민주당이 발의한 첫 특검법이 국회에서 재표결 끝에 폐기되고 7개월여 만에 두 번째 특검법도 최종 폐기됐다. 다만 이날 김 여사 특검법 재표결에선 국민의힘에서 찬성을 비롯해 이탈 표가 최소 4표 나왔다. 여권에선 “야당이 특검법을 재발의해 또 밀어붙이면 다음번엔 부결을 장담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말이 나왔다.
국회법에 따라 무기명으로 이뤄진 이날 재표결에서 김 여사 특검법은 찬성 194표, 반대 104표, 기권 1표, 무효 1표로 부결됐다. 이날 표결엔 국민의힘 의원 전원(108명)과 김 여사 특검법을 발의한 민주당 등 야당 의원 전원(192명)이 참석했다. 국민의힘에서 찬성 2표를 포함해 최소 4표의 이탈 표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재적 의원(300명) 과반이 출석해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통과된다. 300명 전원이 재표결에 참여할 경우 200명 이상이 찬성해야 재가결되는데 국민의힘에서 8명만 찬성하면 특검법이 법률로 확정되는 것이다.
21대 국회 때인 지난 2월 29일 김 여사 관련 특검법 재표결 때는 국민의힘(당시 의석수 113석)에서 110명 참석해 찬성 171표, 반대 109표, 무효 1표로 부결됐다.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의석수가 108석으로 줄었는데 두 번째 특검법 재표결에선 이탈 표가 더 늘어난 셈이다. 민주당은 특검법을 재발의하겠다고 했다.
민주당 등 야당은 21대 국회에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특검법을 강행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해 지난 2월 재표결 끝에 법안이 부결·폐기됐다. 그러자 민주당은 22대 국회가 개원하고 보름도 안 돼 당론으로 특검법을 재발의했다. 수사 대상도 주가조작 사건 외에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인사·공천 개입 의혹 등 8가지로 늘리고, 특검 추천권도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갖도록 했다. 국민의힘에선 “위헌·위법성이 더 가중됐다”고 반발하며 이날 재표결에 들어갔는데 국민의힘 의원 108명 가운데 이탈 표가 최소 4표 정도 나온 것으로 분석되면서 여권에선 “김 여사 리스크에 대한 의원들의 우려가 표결서 일부 드러난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날 국민의힘은 재표결을 앞두고 의원총회를 열고 “야당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는 위헌적 특검법”이라며 김 여사 특검법과 해병대원 특검법 등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원외(院外)인 한동훈 대표도 의원총회에 참석해 “지금 민주당의 특검 법안은 민주당 마음대로 (특검을) 골라서 민주당 마음대로 전횡할 수 있는 내용이고, 이런 법이 통과되면 사법 시스템이 무너진다”고 했다. 한 대표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해법이 필요하다는 당 내외 많은 분의 생각을 저도 안다”면서도 특검법의 부당성을 들어 의원들에게 부결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재표결을 앞두고 일부 국민의힘 의원은 사석에서 “민주당이 특검법을 무한 반복 발의하는 상황에서 김 여사 관련 문제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비공개 의원총회에선 의원들의 관련 발언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발언을 신청한 의원은 없었다고 한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왜 하실 말씀들이 없으시겠나. 이야기가 외부에 공개되니까 안 하시는 것 같다”고 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상당수 의원이 김 여사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일단 이번에는 특검을 저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원들이 침묵하며 넘어가는 분위기였다”며 “추 원내대표가 ‘왜 할 말이 없겠냐’고 한 것은 의원들의 우려를 당 지도부도 인식하고 있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에선 야당의 공격에 맞서 김 여사를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의원들이 과거보다 줄어든 분위기다. 한 중진 의원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한 검찰의 처분이 마무리되는 대로 김 여사의 사과가 필요하다는 게 상당수 의원의 인식”이라고 했다. 민주당이 7일 시작하는 국회 국정감사를 ‘김 여사 국감’으로 만들겠다며 총공세를 예고한 상황에서 여권이 특검 방어에만 매달리는 건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란 취지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여권의 국정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김 여사 이슈 출구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수사 외압 의혹 등과 관련해 윤 대통령을 겨눈 해병대원 특검법에 대한 재표결에서도 국민의힘에서 이탈 표가 최소 4표 나왔다. 한동훈 대표는 야당이 발의한 해병대원 특검법엔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대법원장 등 제삼자가 추천하는 형식의 해병대원 특검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이를 반대하는 대통령실과 대립했었다. 대통령실은 이날 국회 재표결과 관련해 입장을 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