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6일 실시되는 전남 영광군수 재선거가 야(野) 3당의 치열한 접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애초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후보의 양강 구도가 예상됐지만 진보당이 여론조사상 약진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정가에서도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진보당은 2014년 위헌 정당 결정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후신으로, 22대 총선에서 민주당 비례 위성 정당을 통해 의석 3석을 확보했다. 민주당(170석)·조국혁신당(12석)이 네거티브 난타전을 벌이는 사이 진보당이 반사이익을 누리는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야권에선 당원들이 대거 선거구 바닥을 훑으며 민심을 노리는 진보당식 선거 전략이 통하는 것 같다는 시각도 있다.
최근 영광군수 재선거와 관련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야 3당 후보들은 오차 범위 안에서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업체 리얼미터가 남도일보 의뢰로 지난 7~8일 영광군 거주 만 18세 이상 유권자 5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신뢰 수준 95%, 오차 범위 ±4.4%포인트) 결과, 진보당 이석하 후보를 지지한다는 응답이 35.0%, 민주당 장세일 후보 33.4%, 조국혁신당 장현 후보 27.4%였다. 지난달 29~30일 리얼미터 조사에선 민주당 장세일 후보 32.5%, 조국혁신당 장현 후보 30.9%, 진보당 이석하 후보 30.1%였는데, 이석하 후보가 일주일여 만에 오차 범위 안이지만 3위에서 1위로 올라선 것이다.
실제 민주당·조국혁신당에서도 자기들이 영광군수 선거 과정에서 치열한 네거티브전을 벌이면서 진보당 후보의 약진 기세가 만만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야권 관계자는 “영광군민들이 후보 도덕성·정체성을 두고 난타전식 공방을 벌이는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에 실망해 진보당으로 눈을 돌린 것 같다”고 했다. 민주당은 조국혁신당 장현 후보의 잦은 당적 변경과 영광에 집이 없다는 점, 전두환 정권 때 대학 학도호국단 총학생장을 한 점을 집중 공격했고, 조국혁신당도 민주당 장세일 후보의 폭력·사기 전과 등을 문제 삼았다. 진보당 이석하 후보도 집회시위법 위반, 음주 운전 등 전과가 7건 있지만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않았다.
영광은 앞선 군수 선거에서 여러 차례 무소속 후보가 민주당 후보를 밀어내고 당선된 곳이다. 정치권에선 “이 점을 노린 조국혁신당이 ‘민주당 일당 체제를 깨자’고 나서서 민심을 자극했는데, 정작 지난 총선 때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은 조국혁신당은 지역 조직에서 약세를 보이면서 진보당이 이득을 봤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 5월 강종만 전 영광군수가 당선 무효형이 확정되자 진보당 당원 수백 명이 영광으로 내려간 것으로 전해졌다. 야권 관계자는 “진보당 당원들이 마을을 다니며 쓰레기를 줍거나 농민들과 고추를 함께 따며 말벗을 해주고, 읍내에선 노인 짐을 들어주고 길을 건널 때 부축해 주는 등 지역 밀착형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도 영광 읍내 곳곳에선 진보당을 상징하는 하늘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광주(光州)에서 왔다는 신모(47)씨는 “주말에는 300~400명씩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석하 후보도 영광군농민회 시절부터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칼을 갈아주는 봉사 활동을 했다고 한다. 야권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당시 태양광 설비가 논밭까지 들어서 농민들의 반발을 샀는데, 이때 진보당이 농민회와 연계해 중단을 요구하며 농민들의 지지를 얻은 것도 진보당 후보 약진에 영향을 준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송전탑 설치와 관련해 주민 반발이 격했을 때 이 후보가 반대 운동을 함께 한 게 영향을 줬다는 말도 나온다.
야 3당 후보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선거전이 포퓰리즘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이 ‘전 군민 영광사랑지원금 100만원 지급’을 공약으로 내걸자, 조국혁신당은 ‘영광행복지원금 120만원 지급’, 진보당은 ‘영광군민수당 100만원 지급’ 등 현금 살포성 공약을 판박이로 내놨다. 이런 가운데 사전투표(11~12일)를 하루 앞둔 이날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전날에 이어 영광군노인복지관에서 배식 봉사를 했다. 이 대표는 이날 “제가 지방 유세 다닐 때 한 동네에 1박 2일로 있는 경우는 처음인 것 같다”며 “그만큼 이번 영광군수 선거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영광에서 월세방을 얻어놓고 ‘한 달 살이’를 하는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이날 국방위 국정감사를 마치고 곧장 영광으로 내려갔고,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도 영광에서 지원 유세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