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준(왼쪽) 서울고등법원장을 비롯한 법원 관계자들이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 감사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이날 법사위 국감에서 여야 의원들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받고 있는 여러 재판을 두고 공방을 벌였다. /이덕훈 기자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함께 일해온 강혜경씨 측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명씨와 관련한 정치인이라며 27명 명단을 제출한 것이 22일 공개돼 정치권에 파장이 일고 있다. 당사자들 대부분은 이날 “명씨와 거래한 적이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고, 강씨 측은 “그 명단들이 전부 다 문제인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강씨 측 노영희 변호사는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가 열린 지난 21일 국회 법사위에 명씨 여론조사에 등장한 정치인 27명 리스트를 제출했다. 27명 중 윤석열 대통령 등 여권 인사가 24명, 야권 인사가 3명이다.

앞서 명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과 거래한 유력 정치인이 국회의원 25명을 포함해 30명 이상이라고 했다. 강씨도 21일 국정감사에서 “명씨와 거래한 후보자 또는 의원이 25명 정도 있다고 했는데 알고 있느냐”는 민주당 김용민 의원의 질의에 “명단을 제출하겠다”고 했다. 이 명단이 이날 공개된 것이다.

이에 명단에 이름 오른 당사자들은 즉각 선 긋기에 나섰다. 국민의힘 나경원·안철수·윤상현 의원은 페이스북에 “명백한 허위 사실” “명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한 적 없다” “강씨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했다. 민주당 이언주 의원은 “관계없는 정치인을 리스트에 올려 문제의 본질을 흐리지 마라”고 했고, 정의당 여영국 전 의원도 “10여 년 전쯤 미공표 여론조사를 한 번 맡긴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은 본지에 “경남 여론조사 기관이 명씨 업체밖에 없어 4~5년 전 정상적인 여론조사를 의뢰한 것”이라며 “그 이상, 이하도 없다”고 했다. 하태경 전 의원은 “대선 경선 때 소개로 한 번 만나 그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다”며 “여론조사를 의뢰한 적은 없다”고 했다. 한 현역 의원은 “명씨 번호도 없다”고 했고, 다른 전직 의원은 “식사 자리에서 잠깐 본 게 전부”라고 했다.

국민의힘 정희용 의원이 22일 국회 국정감사 도중, 이날 명태균씨가 공개한 김건희 여사와의 대화 내용을 보고 있다. /뉴시스

이 같은 반발을 의식한 듯 노 변호사는 이날 CBS라디오에서 “명단 중엔 그냥 여론조사를 의뢰해서 정상적으로 여론조사 결과를 보여준 데도 있다”고 했다. 명씨가 언론에 자신과 거래했다는 정치인 명단과 강씨 측 명단은 차이가 있다는 취지다. 다만, 명씨가 김영선 전 의원처럼 선거 과정에서 명씨의 도움을 받은 정치인이 추가로 나올 가능성은 있다.

야당은 명씨가 창원 국가 산업 단지 선정 등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키우고 있다. 앞서 명씨는 “창원 산단 기획은 내가 했다”고 했다. 이와 관련,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이날 김어준씨 유튜브 채널에서 “국정 농단이 되는 것”이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도) ‘최순실씨가 연설문을 고쳐줬다’로 시작됐다. 이것도 비슷한 사건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야당은 김건희 여사와 명씨가 영적(靈的) 대화를 나눴다는 강씨의 증언도 계속 부각하고 있다. 강씨는 전날 국정감사에서 “명씨가 김 여사를 처음 볼 때 조상의 공덕으로 태어난 자손이라고 했다” “명씨가 윤 대통령은 장님 무사, 김 여사는 앉은뱅이 주술사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윤 대통령 부부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사망했을 때 조문을 생략한 것에 대해 “명씨가 ‘꿈자리가 사납다’며 김 여사에게 말해 일정이 변경된 것으로 안다”고도 했다. 여권 관계자는 “야권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때도 최순실씨가 주술, 무속과 연관돼 있다고 분위기를 조성했다”며 “결국 허위로 드러나지 않았느냐”고 했다. 명씨도 이날 저녁 CBS라디오에서 “민주당에서 주술적인 프레임을 많이 짜는 것 같다”고 했다.

명씨는 이날 페이스북에 김 여사와 나눈 텔레그램 메시지도 추가로 공개했다. 김 여사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가 명태균의 조언 때문” 등이 적힌 ‘지라시’를 명씨에게 보냈고, 명씨가 “여러 가지 얘기 끝에 소문이 있음으로 끝나네요”라고 답한 내용이다. 명씨는 이를 공개하며 “국정감사에서의 위증은 국회 증언·감정법에 따라 처벌된다”고 썼다. 강씨 증언이 거짓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