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곳 바라보는 한동훈 대표와 추경호 원내대표 - 국민의힘 한동훈(오른쪽) 대표와 추경호 원내대표가 23일 국회에서 열린 확대당직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이날 대통령 친인척 등의 비위를 감찰하는 특별감찰관 추천 문제를 놓고 이견을 노출했다. /이덕훈 기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23일 김건희 여사 등 대통령 친·인척 등을 감찰하는 특별감찰관 추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특별감찰관은 국회가 후보 3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문재인 정부 이후 8년째 공석이다.

지난 21일 한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의 회동에서 윤 대통령은 특별감찰관 후보 추천을 야당이 지체하는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과 연계하겠다고 했지만, 한 대표가 하루 만에 이를 추진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자 추경호 원내대표는 곧바로 “의원총회를 통해 결정될 원내(院內) 사안”이라면서 제동을 걸었다. 윤·한 갈등이 여당 내부로 번지는 양상이다.

한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확대당직자회의에서 “특별감찰관 추천에서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이 전제 조건이라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 국민 공감을 받기 어렵다”며 “특별감찰관 추천 절차를 그 이유로 미루진 않겠다”고 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위반 1심 판결이 나올 다음 달 15일 이전에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국민적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추 원내대표는 “(특별감찰관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기에 많은 의원의 의견을 듣고 최종적으로는 의총을 통해서 결정해야 할 부분”이라며 “원내 최고 의사 결정 기구는 의원총회고 거기의 의장은 원내대표”라고 했다. 특별감찰관 추천 절차 돌입에 앞서 여당 내부의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며 여지를 둔 것이다. 추 원내대표는 “이재명 대표 선고와 특별감찰관 의사 결정 부분이 맞물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도 했다. 민주당은 “특별감찰관 임명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면서도 “김건희 특검법 처리가 먼저”라는 입장을 내놨다.

이 같은 여야 상황에 대해 대통령실은 “여야가 합의해 오면 임명할 것”이라며 “특별감찰관과 북한인권재단 이사 연계 문제는 여당 내에서 해결할 문제”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특별감찰관 임명을 대선 공약에 포함했지만 국회 상황을 이유로 들면서 소극적 태도를 보여왔다. 하지만 이날 한 대표가 특별감찰관 추천 절차 진행을 공식화하면서 이 문제는 ‘김건희 여사 문제’와 연결된 또 다른 현안으로 떠올랐다.

추경호 원내대표의 특별감찰관 관련 발언은 국회의원이 아닌 한 대표가 사전 협의 없이 추천 방침을 밝힌 데 대한 공개 반박이나 다름없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 대표가 김건희 여사 문제와 관련한 입장 차를 확인한 데 이어 한 대표와 추 원내대표가 대립하면서 국민의힘이 사실상 계파 갈등 초입에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이날 친한계 배현진 의원은 의원 전체 단톡방에 “추 원내대표는 이번 정부 내 특별감찰관 도입을 원천 반대하는가”라는 글을 올렸고, 역시 친한계인 박정훈·한지아 의원도 “원내대표가 대통령께서 공약한 것에 반대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의총을 열어 의견을 수렴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호응했다고 한다.

한 대표도 지난 22일 친한계 의원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이재명 대표의 1심 선고로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 민주당에서 이반된 민심을 여권이 받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 전에 우리가 최소한의 조건을 갖춰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의 판결 이전에 김건희 여사 관련 문제가 정리돼야 대야(對野) 공세가 가능하고, 그 지지를 바탕으로 정부 정책 추진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한 대표는 또 추 원내대표의 ‘원내 사안’ 발언에 대해서도 주변에 “원외 당대표면 세법 개정 사안인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이야기도 하면 안 되냐. 당대표는 당의 입장을 대표해 밝힐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대통령실과 당내 친윤 그룹은 “한 대표처럼 김 여사 리스크 선제적 해소에 집착하다가는 자칫 여권 내부 분열만 초래할 것”이라고 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1심 판결로 여론이 여권에 유리해지면 자연스럽게 김 여사 문제를 정리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추 원내대표는 이날 한 대표가 주재한 확대당직자회의에서 “민주당이 이 대표 판결을 앞두고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선동 등 조직적 저항이 거세지고 있다”며 “함께 이 엄중한 상황을 돌파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날 대통령실에서 홍준표 대구시장을 만난 것도 여러 정치적 해석을 낳았다. 윤 대통령이 한 대표와 차담 회동을 한 21일 저녁에는 추 원내대표를 불러 만찬을 했고, 이날은 줄곧 한동훈 대표와 각을 세워 온 홍 시장을 만났기 때문이다. 대통령실과 홍 시장 측은 모두 “지역 현안을 논의했다”고만 했다. 하지만 홍 시장은 이날도 페이스북에서 한 대표에 대해 “저격할 만한 대상이 되어야 저격이라는 용어를 쓰지, 내가 어떻게 새카만 후배를 저격하냐”라며 “엉뚱한 짓 하지 말라고 한 수 가르치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면담 내용을 두고 친한계 일각에서 ‘대통령실이 발언 내용을 각색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과 관련해 “저희는 회담 결과를 있는 그대로 설명했다”며 “어떤 부분이 왜곡이라는 건지 말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당대표와 원내대표

국민의힘 당대표는 당원과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한 대규모 선거인단 투표 및 여론조사로 선출된다. 원내대표는 현역 국회의원들의 상호 투표로 뽑힌다. 국민의힘 당헌에 따르면, 당대표는 당무를 통할(統轄· 모두 거느려 다스림)하고, 원내대표는 국회 운영에 관한 책임과 최고 권한을 갖는다. 당대표 권한인 ‘당무’에 원내대표 권한인 ‘국회 운영’이 포함되는지, 이견이 있을 때 누구의 권한이 우선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