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의 대립이 표면화되면서 한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회담이 갖는 정치적 의미도 커졌다. 이번 여야 대표 회담은 지난 21일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만나기 직전, 이 대표의 공개 제안을 통해 성사됐다.
‘빈손’으로 끝난 윤·한 회동이 여권 내부 갈등으로 이어지자 민주당은 한·이 회담을 일종의 기회로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양측이 회담 시기와 내용을 놓고 조율에 나선 가운데 대통령실을 포함한 여권도 이 회담을 주시하고 있다.
이 대표는 10·16 재·보선이 끝난 뒤 공개적으로 “한 대표에게도 승리를 축하한다”고 했다. 당시 이 대표와 한 대표는 직접 연락을 주고받으며 회담에 대한 얘기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 대표는 지난 21일 오전 당 회의에서 그날 오후 예정됐던 윤·한 회동을 거론하며 “기회가 되면 야당 대표와도 한번 만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고, 3시간 뒤 한 대표는 박정하 비서실장을 통해 이를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윤·한 회동 직전에 여야 대표 회담이 성사된 것을 두고 여권에서는 뒷말이 나왔다. 한 대표가 윤 대통령과의 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을 압박하는 듯한 모양새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반면, 한 대표가 대통령과 회동을 마치고 ‘이 대표와 만나겠다’고 밝혔다면 더 오해를 샀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새미래민주당 전병헌 대표는 “이 대표의 이간계에 여권이 놀아난 듯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 대표는 23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한 대표와 함께 자리했다. 이 대표는 행사장을 떠나며 기자들과 만나 “한 대표에게 보자고 했다”며 “(언제 만날지) 조율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 한민수 대변인은 “이 대표가 오늘 이해식 비서실장에게 회담 의제와 시기, 방식에 대해 논의를 진행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민주당은 이미 회담 내용과 관련해 내부적으로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와 한 대표가 양자 회담을 갖는 것은 지난달 1일 이후 두 번째다. 당시 민생 공통 공약 추진기구 등을 합의했지만, 특검법 등에 대해선 입장 차를 보였다. 야권 관계자는 “당시엔 한 대표가 쟁점과 관련해 대통령실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웠는데 이번에는 다르지 않겠느냐”고 했다.
대통령실을 포함한 여권도 이번 회담에서 어떤 형태로든 ‘김건희 여사 특검법’이 합의될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특검 추천권을 야당이 독점한 민주당의 ‘김건희 특검법’을 반대하는 한 대표가 중립적인 특검법을 발의하겠다고 나올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다음 달 초 국정감사 종료 이후 김건희 특검 추진에 당력을 집중하겠다는 방침인 만큼, 회담에서 김건희 특검을 의제로 다루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한 대표 측은 김 여사 특검법 합의 가능성을 일축했다. 한 관계자는 “민주당에서 김 여사 특검법 얘기를 먼저 꺼낼 수 있지만 우리 관심은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의정 갈등, 물가 대책 등 민생”이라고 했다. 한 대표로서는 김 여사 문제를 놓고 윤 대통령과 대립 중이지만, 야당 대표와 그 문제를 합의할 경우 ‘배신자 프레임’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란 것이다.
한 대표는 이날 당 회의에서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선고가 다음 달 15일 나온다는 점을 거론하며 “그때 우리는 김 여사와 관련한 국민의 요구를 해소한 상태여야만 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한 대표가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정면으로 거론한 데 대한 입장을 기자들이 묻자 답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