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 2023년 4월 1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열린 '서문시장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며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대구·경북 지역의 국민의힘 한 의원은 요즘 상갓집 가기가 겁난다고 했다. “경제가 어려운데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는 도대체 뭐 하느냐” “김건희 여사 문제로 언제까지 싸울 거냐”라고 항의하는 유권자가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지난 설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제대로 대처를 못 한다는 질책은 했어도 정부·여당에 대한 성원도 했었는데 추석 이후론 ‘여권 상황을 보면 속 시끄럽다’고 한숨 쉬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지난 4월 총선에서 참패했지만 대구·경북 지역에선 선거구 25곳 모두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대구·경북 지역 민심도 총선 이후로 여권에 더 차가워지고 있다. 경제는 어려운데 여권이 김건희 여사 관련 문제를 여전히 해소하지 못하고 있고,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 갈등이 장기간 계속되다 최근엔 외부로 표출되면서 이 지역 대통령 지지율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25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대구·경북 지역 응답자 가운데 윤 대통령이 ‘국정 수행을 잘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26%였다. 이는 현 정부 출범 후 최저를 기록한 전국 평균 지지율(20%)과 큰 차이가 없는 수치다. 전날 발표된 NBS 여론조사에서도 대구·경북 지역 대통령 지지율은 33%(전국 22%)였다. 2지선다형(잘하고 있다, 잘못하고 있다)으로 묻는 한국갤럽과 달리 NBS 조사는 4지선다(매우 잘하고 있다, 잘하는 편이다, 잘못하는 편이다, 매우 잘못하는 편이다)로 묻는데 이번 조사에서 대구·경북 응답자 중 ‘윤 대통령이 매우 잘하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9%였다.

그래픽=양인성

이 지역 정치인들도 차가워진 민심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국민의힘 소속 이철우 경북지사는 이날 MBC 라디오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지역 민심과 관련해 “다른 지역보다는 호의적이지만 처음보다는 다소 어려운 점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김건희 여사 논란과 관련해서는 “대통령께서 말한 대로 아주 공식적인 거 외에는 (대외 활동을) 자제하시면 대구·경북에서는 다 인정하리라 생각한다”라고 했다. 이 지사는 본지 통화에서 “우리가 똘똘 뭉쳐서 야당의 공세에 대응해야 하는데 내부 분란이 있으니 도민 걱정이 더 크다”고 했다.

대구시장을 지낸 국민의힘 권영진(대구 달서병) 의원은 “지역구에서 가장 많은 듣는 이야기는 ‘물가·금리 올라 먹고살기 힘들다’ ‘제발 우리끼리 그만 싸워라’ ‘용산(대통령실)도 변해야 한다’는 세 가지”라고 했다. 권 의원은 “우리가 성공하려면 통합과 혁신 둘 다 필요한데 지금은 변하지는 않고 싸우기만 하니까 시민들이 외면하는 것”이라며 “민심의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엎기도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이 지역 정치인들은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김 여사 관련 논란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대구 지역 한 의원은 “대구·경북에선 육영수 여사와 김건희 여사를 비교하는 분들이 많다”며 “연일 신문·방송에 김 여사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민심이 악화되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고 했다.

22일 부산 초량시장 찾은 尹대통령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2일 부산 동구 초량시장을 방문해 시민과 악수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여러분들을 더 잘 살게 해드려야겠다는 마음이 든다”며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실

이날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선 대구·경북 지역 국민의힘 지지율(46%)이 윤 대통령 지지율(26%)보다 20%포인트 높은 디커플링(분리) 현상도 두드러졌다. 정치평론가 최수영씨는 “이번 조사가 21일 윤·한 두 사람 회동 직후 이뤄진 걸 감안하면 대통령이 여권 전체를 끌어안고 문제를 풀어주길 기대했던 전통 지지층의 실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탄핵까지 거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여사 문제 해법을 놓고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충돌하는 것도 민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대통령실 국정기획비서관을 지낸 국민의힘 강명구(경북 구미을)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시민들이 TV에서 윤·한 두 분이 싸우는 게 나오면 불안해서 TV를 꺼버리고 여론조사 응답도 안 한다고 한다”고 전했다.

김승수(대구 북을) 의원은 “시민들이 ‘김 여사에게 자숙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많이 하지만 동시에 여당 대표가 이 문제를 갖고 대통령과 공개적으로 대립하는 모양새가 보기에 남사스럽다는 유권자도 많다”고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역 민심은 윤·한 두 사람에게 각성하고 정치력을 발휘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27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차기 대통령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한 대표를 선호한다는 대구·경북 응답자는 25%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21%)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