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인 20%대에 머물고 있지만 윤 대통령을 강하게 공격해온 더불어민주당 지지율도 30% 안팎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이 연일 터져 나오고 있는데 야당이 이에 따른 반사이익을 못 누리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민주당에서도 최근 당 지도부 일부 인사가 하야·탄핵을 언급한 것을 거론하며 “강성 지지자만 의식해서는 지지율을 반등시키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표가 최근 중도·보수 인사와 접촉을 늘리고 민생·경제 움직임을 활발히 하는 것도 외연 확장을 염두에 둔 것이란 말이 나온다.
이 대표는 30일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과 오찬을 하고 “경험과 지혜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정치 현안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윤 전 장관은 윤 대통령 리더십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면서 “나라가 걱정이다. 다수당을 이끄는 대표는 책임이 무겁다. 이 대표 역할이 크다”고 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상돈 전 의원 등도 만났다. 세 사람은 모두 보수 진영에서 정치를 시작했지만 중도 노선을 표방해왔다는 점에서 이 대표가 중도로 외연을 넓히려는 움직임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표는 오후엔 소상공인·자영업자들과 간담회를 했다. 이 대표는 “제일 큰 걱정은 경제·민생 문제”라며 “소상공인을 포함한 골목 경제, 서민 경제가 살아야 나라 경제도 튼튼해진다”고 했다. 앞서 이 대표는 10·16 재·보궐선거 다음 날인 지난 17일엔 강원 평창을 찾아 배추값 안정을 외치며 민생·경제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대표는 최근엔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 등을 만나는 등 재계 인사들과의 접촉도 늘리고 있다. 다음 달 4일에는 ‘SK AI 서밋 2024′에 참석하고, 11일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를 찾아 정책 간담회를 한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은 내달 2일 당 지도부, 의원, 지역위원장, 당원 등이 대거 참석하는 김건희 여사 규탄 대회를 연다. 김 여사 관련 특검법을 세 번째로 추진하는 등 윤석열 정권을 겨냥한 공세 수위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무대를 장외(場外)로까지 확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 때문에 이 대표가 한편에선 현 정부를 겨냥한 공세를 벌이면서도 민생·경제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만들려고 한다는 말이 나온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30%대에 갇힌 민주당 지지율과 연관이 깊다는 것이다.
한국갤럽의 정기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최근 6개월간 민주당 지지율은 27~33%로 국민의힘 지지율(28~35%)과 비슷하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대중이 ‘이재명의 민주당’을 ‘윤석열·이재명 중 누가 더 싫으냐’의 대결로 치렀던 지난 대선의 연장선으로 보기 때문”이라며 “이런 흐름은 다음 대선 때까지도 이어질 가능성이 커 중도층 잡기에 주력해야 한다”고 했다. 0.73%p 득표율 차로 승부가 갈린 지난 대선 때처럼 다음 대선도 박빙의 진영 간 세력전으로 치러질 공산이 커 중도층 표심이 승패를 가를 것이란 얘기다.
윤 대통령에 대한 공격과 중도 확장 사이에서 민주당 고민도 깊어지는 분위기다. 민주당 지도부에서 “대통령 하야가 답” “탄핵 사유” 등의 발언이 나오는데도 이재명 대표가 “탄핵 얘기를 한 적이 없다”며 한발 빼는 이유도 이런 차원이란 해석도 있다. 민주당은 내달 2일 장외 집회를 진보 성향 단체나 민주노총 등과 연계하지 않고 치르려 하고 있다. 이를 두고도 이 대표 사법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중도층 민심의 역풍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민주당은 최근 검찰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에서 김 여사를 무혐의 처분하자 심우정 검찰총장까지 탄핵하겠다고 예고했다가 막판에 심 총장은 탄핵소추 대상에서 빼기로 했다. 이 대표 지지자들이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을 담당하는 판사 탄핵을 추진하자고 하자 이언주 최고위원이 자제를 촉구하기도 했다. 민주당에선 한동안 ‘현 정부 계엄 준비설’을 줄기차게 제기해왔지만 최근엔 자제하는 분위기다. 작년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 때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주장을 펼치며 장외 투쟁에 나섰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금융투자소득세에 대한 민주당 입장이 ‘시행→유예→폐지’로 점점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것도 중도 외연 확장 전략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