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과반 의석을 앞세워 검찰, 경찰, 감사원 등 사정기관의 내년도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있다. 국민의힘에선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수사·기소한 검찰, 문재인 정권의 정책 비위를 감사한 감사원, 야당과 민주노총 등의 불법 장외집회를 저지한 경찰에 대한 ‘보복성 조치’라고 했다.
민주당 등 야당은 지난 9일 서울 도심서 열린 ‘정권 퇴진 집회’ 때 경찰 대응을 문제 삼으며 “조지호 경찰청장이 사과하지 않으면 경찰의 특정업무경비(특경비), 특수활동비(특활비), 경비국 관련 예산 전액 등을 꼼꼼히 따질 것”이라며 경찰 예산의 대대적인 삭감을 예고했다. 정부는 내년도 경찰 특경비로 약 6481억원, 특활비로 52억원, 경비국 관련 예산으론 2390억원을 편성했다. 이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특경비는 경정 이하 경찰관 12만여 명에게 매월 10만~30만원가량 지급되는 경비다. 그런데 야당은 경찰청장의 사과 여하에 따라 이 예산의 삭감을 결정하겠다고 압박하고 나온 것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에선 민주당 주도로 검찰과 감사원의 특경비·특활비가 전액 삭감됐다. 민주당은 감사원의 업무용 택시비(4억5000만원→1억2000만원), 국내 여비(정부안 57억4800만원→46억원)도 큰 폭으로 감액했다. 야당은 현 정부 출범 후 고위 공직자 인사 검증 등을 위해 신설한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운영 예산 약 4억원도 전액 삭감했다. 인사정보관리단이 윤석열 정부의 ‘시행령 통치의 상징’이라는 이유다.
민주당은 반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예산은 디지털포렌식 장비 도입 등 4억원, 해외 여비 6000만원을 증액했다. 법사위는 이에 더해 “(공수처) 수사 업무의 효율화·최적화를 위하여 해외연수 사업을 추진한다”라는 예산 심사 의견도 달았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자기들 집권 시절 출범시킨 공수처에는 우호적인 예산 심사로 일관하고 있다”고 했다.
야당이 예산 심사 과정에서 정부의 동의 없이 증액안을 일방 처리했다는 논란도 일고 있다. 헌법 제57조는 국회가 정부 동의 없이 예산을 증액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지난 13일 국회 기획재정위 예산소위에서 민주당이 기재부 반대에도 신재생에너지사업 등 360억원가량을 증액한 예산안을 일방 통과시켰다는 것이다.
야당이 윤석열 대통령 내외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엉뚱한 민생 예산이 삭감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회 국토교통위에서 민주당이 대통령 관저 공사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다며 건설산업정보시스템(키스콘) 예산을 삭감했는데, 키스콘은 건설 공사 대장(臺帳) 시스템으로 대통령 관저와는 큰 관련이 없는 사업이라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