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18일 정부가 민간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방치했다며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 대한 탄핵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 탄핵소추와 달리 국무위원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가능하고, 탄핵소추된 국무위원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그 권한 행사가 정지된다.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은 이날 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대북 전단을 또 방치해 남북 긴장을 다시 증폭하는 정권은 정말 미쳤다. 김건희 살리자고 불장난을 마다 않는 범죄 집단”이라며 “국방부 장관 탄핵 사유 점검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전날 북한 김여정은 한국 민간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반발하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제1야당인 민주당이 전단 살포를 막지 않았다며 국방 장관 직무를 중단시키는 탄핵소추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김 최고위원은 “김건희 이슈를 덮겠다고 국민 안전을 볼모 삼는 무능·충성 충암파 국방부 장관은 분쟁 저지와 국민 안전의 보호막이 아닌 걸림돌”이라며 “위헌과 위법, 무능의 사유가 너무 많다”고 했다. 민주당은 정부가 국회 동의 없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참관단을 보내려는 것도 탄핵 사유라고 보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윤 대통령과 같은 충암고 출신인 김 장관이 계엄령 선포 계획의 중심에 있다는 제보가 상당하다”며 “탄핵과 같은 법적 조치로 허튼짓 못하게 막아놔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여권에선 “구체적인 헌법·법률 위배 행위가 확인되지도 않은 국무위원을 탄핵하겠다며 겁박하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이 18일 김용현 국방부 장관 탄핵소추를 검토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나오자 여권에선 “이재명 대표 방탄을 위해 국가 안보를 볼모로 잡는 것이냐”는 말이 나왔다. 이 대표가 지난 15일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데 이어 오는 25일 위증 교사 사건 1심 선고가 내려지는 상황에서 대여(對與) 공격을 통해 지지층을 결속하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국무위원인 국방부 장관 탄핵소추는 재적 3분의 2(200석) 이상 찬성이 필요한 대통령 탄핵소추와 달리 재적 의원 과반 찬성으로 가결돼 민주당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다. 만약 민주당이 김 장관 탄핵소추를 밀어붙일 경우 안보 공백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의 국방 장관 탄핵 움직임에 대해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대통령과 국무위원 등 고위 공직자 탄핵소추는 직무상 중대한 위헌·위법 행위가 있어야 하는데 민주당이 주장하는 김 장관 탄핵 사유가 여기에 해당하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이 김 장관 탄핵소추를 밀어붙이더라도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국회에서 탄핵소추되면 헌재 결정이 나올 때까지 김 장관 권한 행사가 정지된다는 점이다. 특히 탄핵 결정에는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6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데, 현재 헌법재판관은 6명밖에 없다. 최근 퇴임한 국회 몫 헌법재판관 3명을 국회가 선출하지 않은 탓이다. 헌법재판관이 6인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들이 만장일치로 탄핵을 결정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어 심리가 상당 기간 지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민주당이 탄핵소추했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헌재의 기각 결정이 나오기까지 167일간 직무가 정지됐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국민 안전을 볼모로 국방 책임자를 탄핵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이날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에선 대통령 탄핵 주장도 잇달아 나왔다. 송순호 최고위원은 “대통령실과 대통령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X소리를 해댈 것이다. 거짓말 정권, X소리 정권에 더 이상 국민의 권한을 위임할 수는 없다”며 “하야(下野)가 안 된다면 탄핵과 임기 단축 개헌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주철현 최고위원도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시작된 대학가의 시국 선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며 “윤 대통령은 시국 선언에서 확인된 국민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간 민주당은 일부 인사들의 ‘대통령 탄핵’ 주장에 대해 당 지도부 입장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어왔다. 그러나 이 대표 선거법 위반 사건 1심 선고 이후 지도부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탄핵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다만 황정아 대변인은 최고위원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의원 개인의 의견은 충분히 발언할 수 있다”고 했다.
민주당은 내부적으로 이 대표를 중심으로 한 단일 대오 유지를 위한 단속에 나선 분위기다. 민주당 당대표 비서실장인 이해식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이재명 대표가 지난 16일 장외 집회에서 비가 내리는 가운데 연설하는 사진을 올리고 “더 훌륭한 인간이 되고자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야말로 신의 사제요, 신의 종”이라고 했다. 최민희 의원은 “이미 일부 언론이 ‘민주당에 숨죽이던 비명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한다”며 “(비명계가) 움직이면 죽는다. 제가 당원과 함께 죽일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차원에서 이 대표 재판에 대응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이건태 의원은 “2심부터는 당에서도 (이 대표 법률) 지원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 나와 검토하고 있다”며 “굉장히 당연한 조치”라고 했다. 이 대표 개인이 부담하던 변호사 비용을 당 차원에서 부담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징역형이 확정되면 당에서 보전받은 선거 비용 434억원을 반환해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대표 개인의 문제라 보기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