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성규

더불어민주당이 28일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 소추 추진 방침을 밝히면서 국가 최고 감사 기구 수장의 권한이 정지될 가능성이 커졌다. 감사원장 권한이 정지되는 것은 처음이다. 감사원은 대통령 직속 기구지만 헌법에 직무 독립성이 규정돼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최 원장을 탄핵 소추하면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올 때까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조은석·김인회 감사위원이 원장 권한 대행을 차례로 맡게 된다. 감사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주요 의사를 결정하는 감사위원회의도 ‘문재인 정부 성향 3인 대(對) 윤석열 정부 성향 3인’의 6인 체제로 당분간 운영된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감사원의 헌법상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이라며 민주당에 감사원장 탄핵 시도를 중단하라고 했다.

민주당은 최 원장이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회 증언감정법을 위반했다며 탄핵 소추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 당선 후 대통령실 관저 이전을 추진하는 과정에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부당하게 개입한 의혹을 감사원이 발견하고도 문제 삼지 않았고,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는 국회 요구를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했다는 주장이다. 민주당은 이와 별개로 이미 국회 법제사법위 의결을 거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최 원장을 고발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현 정권 봐주기 감사를 해 정치적 중립 의무를 포기한 감사원장은 탄핵하는 게 마땅하다”고 했다.

최 원장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11월 국회 동의를 거쳐 임기 4년의 감사원장에 임명됐다. 윤석열 정부도 최 원장이 감사원 출신인 점 등을 고려해 감사원 독립성 보장 차원에서 그의 유임에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최 원장을 민주당이 탄핵하려는 것을 두고 정치권에선 감사원이 현 정부 출범 후 전임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 추진 과정을 감사하자 과반 의석을 앞세워 감사원 손보기에 나선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감사원은 현 정부 출범 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소득·고용 통계 조작 의혹, 사드 정식 배치 고의 지연 의혹, 북한 GP(감시 초소) 철수 부실 검증 의혹 등 지난 정부 때 벌어진 각종 정책 집행 관련 의혹을 감사해 왔다. 통계 조작과 사드 배치 지연 의혹과 관련해서는 문재인 정부 청와대 인사들의 범죄 혐의를 포착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민주당이 최 원장 탄핵안을 통과시키면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올 때까지 최 원장 권한이 정지된다. 이러면 원장 권한 대행은 감사위원 6명 중 가장 오래 재직한 조은석 위원이 맡는다. 조 위원은 내년 1월 17일 임기 만료로 퇴임하는데 그러면 그다음 오래 재직한 김인회 위원이 권한 대행직을 이어받는다. 조 위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고검장을 지냈고 김 위원은 문 전 대통령과 함께 ‘검찰을 생각한다’라는 책을 썼다. 두 사람 다 문 전 대통령이 임명했다. 이들이 감사원장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경우, 주요 감사에서 상당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감사원의 주요 감사가 지연되거나 감사 처분 결정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감사원의 감사 정책·계획·처분 등을 결정하는 감사위원회의는 최 원장을 포함해 감사위원 7인으로 구성되고, 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 감사위원은 문 전 대통령이 임명한 4명(조은석·김인회·이미현·이남구)과 윤 대통령이 임명한 2명(김영신·유병호)이다. 이 가운데 이미현·이남구 위원은 윤 대통령 당선인 시절 문 전 대통령과 협의를 거쳐 임명돼 감사위원회의는 사실상 3대3 구도로 운영됐고, 회의 의장인 최 원장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했다. 그런데 최 원장 권한이 정지되면 나머지 6명 중 4명이 찬성해야만 의결이 가능해, 주요 의사 결정이 이뤄지지 않는 등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이날 입장문에서 “최 원장이 취임한 이후 국가 통계 조작,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등과 같은 국기 문란 사건을 철저하게 감사하는 등 국가 질서의 근본을 바로 세우기 위해 엄정하게 대응해왔다”면서 “헌법과 법률에 반하는 탄핵 추진은 국가 회계 질서 및 공직 질서 유지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감사원은 “감사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려는 이런 시도는 헌법 정신을 위반하는 부당한 압박”이라며 “감사원장이 탄핵(소추)된다면 감사원의 헌법적 기능이 마비되고, 이는 국민의 피해로 귀결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