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지난 7일 의결 정족수 미달로 폐기(표결 무산)됐지만, 통과될 때까지 무한 반복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동일인에 대한 탄핵 소추 의결은 회기에 한 번밖에 안 되기 때문에 회기를 약 일주일 단위로 잘게 나눠서 ‘매주 수요일 탄핵안 발의, 토요일 표결’을 하겠다는 것이다. 당장 오는 11일 윤 대통령 탄핵안을 다시 발의해 14일 표결에 나서겠다고 했다. 민주당이 ‘탄핵안 무한 발의’ 공세를 펼치며 ‘조기 대선’ 국면을 만드는 데 사활을 거는 이유는 ‘시간’이 생명인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7일 밤 윤 대통령 탄핵안이 폐기된 이후 윤 대통령을 “대한민국 최악의 리스크가 되어 있는 윤석열씨”라고 부르며 “반드시 탄핵하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8일 기자 회견에서도 “오는 12월 14일 민주당은 국민의 이름으로 반드시 윤석열을 탄핵하겠다”고 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매주 토요일, 탄핵과 특검을 꼬박꼬박 추진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8일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밝힌 윤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김민석 최고위원은 한 총리와 한 대표의 대국민 담화 직후 기자 간담회에서 “대통령의 직무 정지만이 유일하게 헌법에 정해진 절차이고, 그 외 어떤 주장도 위헌이자 내란 지속 행위“라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윤석열 등 관련자 전원을 체포해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정부·여당이 ‘질서 있는 퇴진’을 핑계로 시간을 끌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처럼 민주당이 ‘대통령 탄핵’에 사활을 거는 것은 결국 ‘탄핵→ 조기 대선’이 이재명 대표가 집권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인 사법 리스크를 단번에 해소할 방안이기 때문이란 말이 나왔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 대표가 사법부 재판으로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없는 상황이 오기 전에 최대한 빨리 대선 날짜를 확정하려 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가 받고 있는 여러 사건 재판 가운데 속도가 가장 빠른 것은 지난달 15일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다.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 형을 확정받으면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선거법은 선거 사건 1심을 6개월, 2·3심은 각각 3개월 안에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동안 강행 규정보다 훈시 규정에 가까웠지만, 조희대 대법원장이 재판 지연 해소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원칙대로라면 이 대표 선거법 사건은 내년 5~6월에 확정 판결이 나올 수 있다. 법원은 지난 6일 이 건의 항소심 재판부를 서울고법 형사6부로 배당했다.
판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이 대표가 지난달 25일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위증 교사 사건도 사건이 간단해 2심 결론은 빠르게 나올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1심 판결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가 많아 2심에서 뒤집힐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워 이 대표가 내심 불안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충분히 탄핵 사유가 된다는 판단과, 그동안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 사건은 신속하게 결론을 내려온 전례 등도 민주당이 ‘탄핵안 반복 발의’ 방침을 세운 이유로 보인다. 헌재는 탄핵 사건 접수 후 180일 안에 결정을 내리면 되는데 대통령 사건은 ‘국정 혼란 최소화’ 차원에서 선고까지 100일을 넘긴 적이 없다. 2004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기각 결정은 사건 접수 63일 만에 나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는 국회 탄핵안 통과부터 조기 대선까지 5개월 사이에 다 이뤄졌다. 박 전 대통령 탄핵안은 2016년 12월 9일 국회를 통과했고, 91일 뒤인 2017년 3월 10일에 탄핵 인용 결정이 났다. 이후 2017년 5월 9일 대선을 치렀다. 여권 관계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박근혜 시즌 2’ 시나리오에 집착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