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세(65·서울 용산) 국민의힘 신임 비상대책위원장이 30일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으로 불안과 걱정을 끼쳐 드린 점, 국정을 책임지는 집권 여당의 비대위원장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라고 했다.
권 위원장은 이날 국민의힘 전국위원회에서 임명안이 의결된 후 서면 취임사를 통해 “국민은 하루하루가 너무 힘든데 우리 당, 우리 국회, 우리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 너무나 송구스럽다”라며 “처절하게 반성하고 국민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며 변화와 혁신을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27일 만에 나온 국민의힘 차원의 공식 사과였다.
권 위원장은 12·3 비상계엄 사태로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소추당하고 한동훈 전 대표가 사퇴하는 등 여권의 리더십 공백 상태에서 국민의힘을 이끌게 됐다. 만약 헌법재판소에서 윤 대통령 탄핵을 인용하면 그로부터 60일 안에 조기 대선도 치러야 한다.
권영세 신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이날 취임 일성으로 12·3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소추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은 이 문제를 매듭짓지 않고서는 국민의힘이 처한 위기 수습이 어렵다고 봤기 때문으로 보인다. 45년만에 선포된 비상계엄을 두고 “위헌·위법적”이란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을 권 위원장도 알고 있다는 얘기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권 위원장이 계엄에 대한 당 차원의 입장 정리 없이 위기를 수습하는 건 어렵다고 보고 사과 메시지부터 낸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하지만 권 위원장 취임사에는 이번 비상계엄의 위헌·위법 여부에 대한 평가는 담기지 않았다. 국민의힘에선 “권 위원장으로선 당의 균열을 막기 위해 ‘대통령 탄핵’ 찬반으로 갈린 의원과 지지층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권 위원장 취임 메시지를 보면 권 위원장이 여권의 ‘탄핵 반대파’ 세력을 의식해 과감한 쇄신보단 안정에 방점을 뒀다는 평이 나왔다. 지난 14일 국회의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때, 국민의힘 의원 108명 가운데 85명이 반대표를 던지는 등 ‘탄핵 반대파’가 당내 다수를 점한 상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권 위원장은 이날 당원들을 향해 “우리는 삭풍의 천막 당사에서도 다시 일어섰고, 8년 전 탄핵의 모진 바람도 이겨내고 당을 재건하여 정권 재창출을 이뤄냈다. 서로 생각이 조금 다르더라도, 지금의 위기 앞에서는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한다”며 단합을 강조했다.
권 위원장이 이날 발표한 비대위원·당직자 인선도 ‘탄핵 반대파’ 위주로 이뤄져 당 균열을 막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분석이 나왔다. 권 위원장은 신임 비대위원으로 3선 임이자(경북 상주·문경) 의원, 재선 최형두(경남 창원마산합포) 의원, 초선 김용태(경기 포천·가평) 의원, 초선 비례대표 최보윤 의원을 임명했다. 당연직 비대위원인 권 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김상훈 정책위의장 등을 포함해 비대위원 7인 전원이 원내 인사로 구성됐다.
권 위원장은 당 조직·예산을 총괄하는 사무총장에 3선 이양수(속초·인제·고성·양양) 의원을 임명했다. 전략기획부총장과 조직부총장에는 각각 재선 조정훈(서울 마포갑) 의원과 초선 김재섭(서울 도봉갑) 의원이, 당 수석대변인에는 원내 수석대변인을 지낸 초선 신동욱(서울 서초을) 의원이 임명됐다. 당 법률자문위원장을 맡은 초선 주진우(부산 해운대갑) 의원은 유임됐다. 권 위원장은 비서실장에는 초선 강명구(경북 구미을) 의원을 내정했다. 강 의원은 대통령 부속실 선임행정관과 기획비서관을 거친 윤 대통령 직계 인사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권 위원장이 지역·선수를 고려해 원내 중심 비대위를 꾸리는 등 쇄신보단 안정에 방점을 둔 인사로 당 균열 요인을 최소화하려 한 것 같다”라고 했다. 사무총장에 중도·합리 성향으로 꼽혀온 이양수 의원을 임명하고 소장파 김용태·김재섭 의원을 각각 비대위원과 조직부총장에 임명한 것은 쇄신 색채를 내려 했다고 평하는 의원도 있다. 다만 ‘한동훈 지도부’ 때와 비교해 친윤 성향 인사들이 전진 배치돼 국민의힘의 외연이 축소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국민의힘의 한 영남권 의원은 “‘도로 친윤당’으로는 ‘계엄의 바다’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면서 “윤 대통령과 계엄 사태에 대해서 확실히 선을 긋지 않는다면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권 위원장은 이날 취임식을 생략하고 곧바로 여객기 착륙 사고 참사가 발생한 무안공항으로 내려가 희생자 유가족을 만났다. 그는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로 안타깝게 돌아가신 분들께 마음 깊이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며 “국민의힘은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하여 신속한 사고 수습과 피해자 지원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