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의힘의 대선 경선 레이스가 시작됐지만 경선 후보 8명의 지지율 합이 30% 안팎의 박스권에 갇혀 맥을 못 추고 있다. 국민의힘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정국이 석 달여 이어지면서 조기 대선 준비를 거의 하지 못했다. 그나마 국민의힘에선 윤 전 대통령 파면이 확정된 후 경선 레이스가 시작되면서 “후보 지지도가 반등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현재 여론조사 흐름은 국민의힘 기대와는 반대로 가고 있다. 국민의힘 안팎에선 “윤 전 대통령과 후보들이 계엄·탄핵 사태의 늪에서 계속 허우적대면서 지지도 반등의 계기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6~18일 실시한 차기 대선 주자 적합도 조사에서 국민의힘 경선에 출마한 후보들은 김문수(12.2%) 후보를 제외하곤 한 자릿수 지지도를 기록했다. 한동훈 8.5%, 홍준표 7.5%, 나경원 4.0%, 안철수 3.7% 등이었다. 국민의힘 경선 후보 8명 중 5강으로 꼽히는 이들의 지지도 합은 35.9%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 1명 지지도(50.2%)에 14.3%포인트 뒤지는 수치다. 한국갤럽이 지난 15~17일 실시한 장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 김문수·홍준표 후보가 각각 7%, 한동훈 후보가 6% 지지도를 기록해 범보수 진영 후보들의 지지도 합은 27%를 기록했다. 이 조사에서 이재명 후보 지지도는 38%였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은 “탄핵 심판 국면에서 이재명 후보는 일찌감치 대선 캠페인에 나선 반면 국민의힘은 발이 묶여 있었던 영향”이라고 했다. 윤 전 대통령 탄핵 충격파를 맞았고, 경선 후보들의 조기 대선 준비까지 늦어지면서 지지율 부진이 나타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지지율 답보 상태를 단기간에 타파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 8명 전원 일치로 탄핵이 인용돼 보수 지지층이 상당히 충격을 받아 국민의힘 후보들이 좀처럼 지지 동력을 회복하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문제는 후보들도 계엄·탄핵 찬반 프레임에 갇혀 반등의 계기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대선은 미래 비전 경쟁인데 후보들이 계엄·탄핵 프레임에 빠져 허우적대는 인상을 유권자에게 주고 있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1일 “대한민국 헌법 질서를 믿는 자유 진영이 모두 하나로 힘을 모아야 한다”며 “오늘 국민의힘은 당의 문을 다시 활짝 열겠다”고 했다. 과거 이런저런 이유로 당을 떠나 돌아오지 못한 인사들의 복당(復黨)을 전향적으로 허용하고, 나아가 당 밖의 세력과도 연대·연합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세력 연합을 통한 외연 확장으로 지지율 정체를 타개하겠다는 얘기다.
범보수 진영은 2020년 21대 총선에 앞서 ‘반문재인’을 내걸고 미래통합당으로 뭉친 적이 있다. 당시 황교안 대표의 자유한국당과 유승민 의원이 이끌던 새로운보수당 출신 세력이 단일 대오를 구성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 이준석·김재섭·천하람 의원 같은 인사들도 미래통합당에 합류했다. 하지만 미래통합당은 그해 총선에서 민주당에 180석을 내주는 궤멸적 참패를 당했다.
정치 전문가들은 “단순히 사람·세력만 연합한다고 민심을 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20년 총선에선 반문 정서보다는 반(反)통합당 정서가 더 강해서 범보수 세력이 패했던 것”이라며 “결국 국민의힘이 계엄·탄핵 사태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미래 비전,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역량을 보여줘야 지지를 회복할 수 있다”고 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지지하는 차기 주자가 없다고 응답한 부동층(浮動層)이 20% 안팎 존재하기 때문에 선거 결과를 속단하기는 이르다”며 “국민의힘이 정체성 공방을 잘 극복하고 중도 외연을 확장하느냐가 변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