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뉴질랜드 한국 대사가 부하 외교관의 성추행 피해자인 뉴질랜드인 W씨에게 사건 발생 2년이 지난 2019년말 위로 편지와 인형 선물을 줬던 것으로 3일 파악됐다.
현재 국내 근무 중인 이 대사는 2017년말 사건 신고 접수 당시 가해자와 피해자를 신속히 분리하지 않고 한 건물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등 관리 부실의 책임이 있는 것으로 청와대 조사 결과 나타났다.
성추행 사건 당시 주뉴질랜드 대사의 아내가 2019년 11월 W씨의 가족에게 쓴 편지를 보면, 대사의 아내는 “(가해자인) K 참사관과의 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들었다)”면서 “어쩌다 그런 일이 생겼는지…빨리 좋아지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대사님도 달리 어쩔 도리가 없고 해서 고민이 많다”면서 “순조로이 해결되길 기원하곤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 한국에 다녀오며 (피해자 자녀에게) 주면 좋겠다 싶어 인형 하나를 샀다”면서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고 했다. 인형은 카카오톡 캐릭터인 카카오프렌즈 인형이었다.
이 편지는 피해자 W씨가 2019년 10월 뉴질랜드 경찰에 한국 외교관 K씨를 성추행 혐의로 신고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쓰였다. 앞서 피해자는 2018년 11월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가해자 K 참사관과 외교부 장관의 문제를 지적하는 진정도 냈다.
이 진정의 결과는 20개월이나 지나서야 나왔다. 인권위는 2일 W의 진정에 대한 결정문을 피진정인인 K와 그가 속한 기관장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 앞으로 보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외교부에 보낸 결정문에서 “사건처리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보기 어려우나 사건 초반 가해자·피해자 간 분리조치 불충분, 재외공관 인사위원회 구성, 성희롱 조사·처리 절차규정 지침 매뉴얼 부재 등 처리 과정에서 일부 미흡했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재외공관에서 성희롱 발생 시 조사·구제 과정에서 공정성이 담보된 매뉴얼을 마련해 시행하는 등 적절한 대응을 외교부에 권고했다. 인권위는 K씨에게는 부적절한 신체접촉 행위를 성희롱으로 인정하며 ‘피해자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라’고 권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권위는 지급액까지 특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인권위 권고를 2일 접수했으며 관련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권위 권고를 받은 외교부와 K씨는 앞으로 90일 이내 인권위에 이행 조치 계획을 통지해야 한다.
강경화 장관은 이날 별도의 입장을 내지는 않았다. 그는 최근 국회 외통위 회의에 출석, “이번 사건에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이번 성 비위 사건은 외교부의 부실 대응 등으로 발생 2년여가 지나도록 원만히 해결되지 않아 지난 7월 28일 뉴질랜드 총리가 정상통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항의하는 초유의 외교 참사가 벌어지는 등 양국 외교문제로 번졌다.
본지는 피해자에 대한 위로 편지와 사건 발생 당시 조치 등과 관련한 입장을 묻기 위해 해당 대사에게 수차례 연락했다. 하지만 그는 응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