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재무부·상무부가 1일(현지 시각) ‘북한의 탄도미사일 조달에 관한 산업계 주의보’를 전 세계를 대상으로 발령했다. 미사일 관련 기술·장비를 조달하려는 북한의 노력을 “무심코라도 도울 경우 미국과 유엔의 제재를 받을 위험”이 있으니 주의하라는 내용이다. 미 행정부가 북한의 탄도미사일 조달에 관한 주의보를 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는 2일 오전 우리 측 북핵 수석 대표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대북 제재 공조를 당부하고 북한의 도발 가능성 등 한반도 정세를 공유했다. 그는 최종건 외교부 1차관과도 통화했다.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비건 부장관은 우리 측에 이번 주의보에 대해서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초유의 ‘3개 부처 합동 주의보' 발령 직후 비건 부장관이 외교부 수뇌부와 연쇄 통화한 것을 두고 외교가에선 “남북 교류 재개를 위해 제재 우회로 찾기에 열심인 한국에 ‘과속 자제‘를 당부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국(ISN),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이날 “미국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지원하거나 보조하는 단체와 개인들의 책임을 묻는 데 충실할 것”이라며 19쪽짜리 주의보를 각각의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이들은 주의보에서 “산업계는 북한의 조달 시도를 감지하고 무산시키는 최전선에 있다”며 “탄도미사일 프로그램과 연관된 북한 단체나 개인들에게, 특히 북한과의 관계나 최종 사용자를 은폐하는 제3자를 통해 민감한 기술을 이전하는 데 연관되지 않도록 각별히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자·화학·금속·소재 산업과 금융·운수·물류업을 취약 분야로 꼽았다.
미국 정부는 조선광업개발무역회사(KOMID)와 북한 군수공업부 등을 탄도미사일 관련 주요 조달자로 지목하고 이들이 “기만적 수법”으로 해외에서 관련 물자를 조달하려 한다고 경고했다. 또 “무해하게 보이는 물품도 북한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사용될 수 있다”며 미사일 개발에 전용될 수 있는 소재·품목을 열거했다. 여기에는 이동식 발사대(TEL)로 전용될 수 있는 임업용 다축(多軸) 트럭과 미사일 연소관을 만들기 위한 탄소섬유 등이 거론됐다.
미국 정부는 또 “어떤 물품·서비스·기술이든 북한과 최소 한 번 상당한 수입 또는 수출에 관여”한 것만으로도 미국 독자 제재의 철퇴를 맞을 수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제재 대상인 북한의 여러 단체와 개인에게 “금융, 물질, 기술적 지원을 제공하거나 제공하려고 시도한 것”만으로도 제재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북한과 어떤 거래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얘기다. “북한 내에서 건설, 에너지, 금융, 어업, 정보 기술, 제조업, 의료, 광업, 섬유, 운송 산업을 운영”하는 행위도 제재 대상이다. 이는 남북교류협력법 개정과 남북의료교류법 발의, 통일부의 ‘물물교환’ 구상 같은 우리 정부·여당의 남북 교류 시도에 대한 경고로도 볼 수 있다.
미국이 대선을 두 달 앞둔 상황에서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억지하고 제재망을 단속하는 차원에서 이번 주의보를 발령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국무부는 주의보를 발표하며 “북한은 지난해 여러 개의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며 탄도미사일을 계속 시험했다”고 강조했다. 미 정부는 주의보에서 미사일 고체연료 생산에 쓰이는 알루미늄분말과 과염소산암모늄 등을 북한에 판매하지 말 것도 당부했다.
한편 미 법무부도 이날 대북 제재 회피를 위한 북한의 돈세탁을 도운 기업을 적발해 67만3714달러(약 8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고 이날 밝혔다. 2014년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된 ‘양반 코퍼레이션’이란 이름의 이 회사는 2017년 2월부터 2018년 5월까지 북한 고객을 위한 것이란 사실을 숨기고 미국 은행과 거래한 혐의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