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취임 후 주한 미·중·일 대사 연쇄 면담, 미국 방문 등 활동의 보폭을 빠르게 넓히고 있는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을 두고 외교가에선 “과연 실세 차관”이란 말이 나온다. 외교 소식통은 15일 “최근 언론에 최 차관이 강경화 장관보다 비중 있게 노출되고 있다는 점 말고도, 외교부 내에 최 차관을 기존 차관들보다 극진히 모시는 기류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외교부 안팎에선 최 차관이 지난주 방미 때 고윤주 북미국장을 대동한 것이 화제였다. 통상 외교부 지역국장은 장관의 해외 출장을 수행하고, 차관 출장엔 국장보다 한 계급 낮은 심의관이 따라가기 때문이다. “실세 차관이라 그런지 의전도 ‘장관급’으로 격상한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논란이 커지자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을 만나 “코로나로 북미국장이 한동안 미국 출장을 못 갔기 때문에 이번에 간 것”이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최 차관은 또 자신의 보좌관을 기존 1명에서 2명으로 늘렸다. 차관이 보좌관 2명 거느리는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정부 소식통은 “외교부 1차관실 관련 직제를 개편한 것은 아니다”라며 “외교부가 지난달 부임한 최 차관의 요구사항 등을 종합 고려해 일정 기간 ‘보좌관 2명 체제’로 그를 보필하도록 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 차관이 외교 실무 경험이 없는 학자 출신임을 감안해 몇몇 외교부 간부가 보좌관 보강 조치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차관은 요직으로 꼽히는 외교부 평화외교기획단장(국장급)에 청와대 근무 당시 호흡을 맞춘 임갑수 선임행정관을 앉힌 것으로 확인됐다. 평화외교기획단장은 한미 워킹그룹을 담당하며 대북 제재·사업과 관련한 각종 실무를 책임지는 자리다. 외교 소식통은 “이 자리는 최 차관이 청와대 근무 당시 갈등설을 빚은 김현종 안보실 2차장의 측근 인사가 강력 희망했지만 '최 차관 사람’인 임 전 행정관에게 밀렸다”고 했다.
최 차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 책사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의 직계 제자다. 연대 정외과 교수를 지내다 현 정부 출범 후 청와대 국가안보실 비서관으로 기용됐다. 이번에 자신의 제2 보좌관으로 발탁한 인물도 연세대 출신이다. 최 차관은 또 “한미 동맹이란 신화를 깨야 한다”는 주장을 개진하며 ‘자주파’로 분류돼 왔다. 공직에 진출한 뒤에도 자신의 SNS 배경화면에 ‘한반도기(旗)’를 쓰는 등 ‘우리 민족’ ‘남북 우선’을 강조해왔다.
외교 소식통은 “이 정부에서 외교안보팀 요직에 발탁되려면 ‘자주파’이거나 ‘연정(연세대 정외과)’ 출신이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며 “40대 중반의 최 차관이 ‘실세’로 불리는 것은 그 둘을 모두 갖췄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취임한 지 한 달이 되지 않은 최 차관이 의욕적 행보를 이어가는 것도 이처럼 ‘든든한 배경’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 같은 광폭 행보가 가시적 외교 성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당장 외교부가 지난 10일 최 차관 취임 첫 해외 출장인 방미의 성과물로 상설 협의체인 동맹대화 신설을 내세웠지만, 정작 미국은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등 매끄럽지 않은 모습이 연출됐다. 최 차관은 양측이 협의체 신설에 합의한 것처럼 밝혔지만, 미 국무부 보도자료엔 이에 대한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닷새가 지난 15일 나온 국무부 입장은 "비건 부장관이 (동맹대화를)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데 동의했다”는 것이었다. ‘신설 합의'라는 외교부 발표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국무부는 달갑지 않은 회의 결과는 보도자료에 담지 않는 방식으로 불편한 속내를 드러낸다”며 “'40대 실세 차관'이란 평가 속에 부임한 최 차관이 첫 성과를 내놓으려고 서두르다가 벌어진 해프닝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