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 주도의 다자 협력 기구를 만드는 문제를 놓고 정면충돌했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16일(현지시각) “인도·태평양이 우리가 최우선하는 전구(戰區)”라며 “러시아와 중국 같은 나라를 상대하는 우리의 가장 큰 이점은 견고한 동맹과 파트너들의 네트워크”라고 말했다. 이날 군사 전문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에서 연설한 에스퍼 장관은 “동맹과 파트너 간의 집단 안보와 협력을 유지하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훌륭한 기준점”이라며 “그 방향으로 움직여 갈수록 우리가 강해진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 미국의 동맹과 파트너를 결집시키는 나토 같은 다자 기구를 만들겠다는 뜻이다.
에스퍼 장관은 “인도·태평양 지역은 국제 무역 허브일 뿐만 아니라 강대국 경쟁의 중심지”라며 “중국 인민해방군의 안정을 해치는 활동들에 맞서 미국은 반드시 분쟁을 억제하고 필요하면 싸워서 이길 준비가 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 중국이 미국과의 잠재적 충돌을 생각한다면 미국만이 아니라 일본, 호주, 한국, 싱가포르 등도 생각해야 한다. 이 지역에 진출해 있는 우리의 유럽 파트너들은 언급도 안 했다”고 말했다. 중국에 맞설 동맹국으로 한국도 콕 집어 언급한 것이다.
그는 “파트너십을 계속 구축하고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 국방 전략의 중요한 부분”이라며 “미·일, 한·미, 미·호 등 양자 관계에서는 매우 좋지만 좀 더 다자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4자 협력체인 쿼드(Quad)를 언급하며 “쿼드를 계속 밀어붙일 것”이라고 했다.
이런 구상에 중국은 강력히 반발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이날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 같은 신흥 경제를 이유 없이 탄압하고 심지어 다른 국가들을 협박해 자신의 편에 들게 하면서 신냉전을 조성하려 한다”며 “이런 행위는 국가 간 교류의 마지노선을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미국 주도의 다자 연합체 관련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면서도 이에 동참할지 검토할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중국을 의식해 미국의 반중(反中) 캠페인 동참 요구에 애써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17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에스퍼 장관의 쿼드 등 언급과 관련 “구체화된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