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A씨 사살·시신 훼손 사건은 지난 21일 오전 11시 30분 소연평도 남방 1.2마일(2㎞) 해상에서 시작됐다. 그날 자정부터 오전 4시까지 당직근무를 섰던 A씨가 점심시간에 보이지 않자 다른 선원들이 선내와 인근 해상을 수색한 것이다. 당시 선내에서는 A씨의 슬리퍼만 발견됐고, 선원들은 오후 1시쯤 해양경찰청에 A씨의 실종을 신고했다.
해군과 해경, 해수부 소속 선박 20여 척과 항공기 2대까지 정밀 수색에 나섰지만 A씨의 행적은 묘연했다. 그의 행적이 파악된 건 22일 오후 3시 30분 군의 첩보를 통해서다. 군 관계자는 “구명조끼를 입은 상태에서 한 명 정도 탈 수 있는 부유물에 탑승한 기진맥진한 상태의 실종자를 북한이 최초 발견한 정황을 입수했다”고 했다. 군은 이때까지는 북한 선박이 발견한 사람이 A씨임을 확인하지 못했고, 어디서 A씨가 발견됐는지도 알지 못했다.
북한 선박은 A씨를 발견했지만, 태우지 않은 채 일정 거리 떨어진 상태에서 지켜봤다. 북한이 최초 A씨를 발견한 지 1시간 10분이 지난 오후 4시 40분쯤 우리 군은 표류자를 A씨로 특정했다. 군 관계자는 “이 시각에 해당 인물이 A씨라고 특정할 수 있는 정황을 확인했다”며 “이때 (북측은) 실종자와 일정 거리 떨어져 방독면을 착용하고 실종자의 표류 경위를 확인하면서 월북 진술을 들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일종의 해상 심문이 이뤄진 것이다. 북측 선박은 A씨가 해상으로 유실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다고 했는데, 밧줄 등으로 A씨가 타고 온 표류물을 배에 연결한 것으로 추정된다. A씨가 북한 선박에 의해 발견된 곳은 최초 실종 지점에서 서북 쪽으로 38㎞ 떨어진 황해남도 등산곶 인근이었다.
북한은 이후 5시간 동안 A씨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와중에도 A씨를 풀어주지 않고 배 인근에 붙들어 뒀다. 군 관계자는 “내부 계통을 거치며 A씨의 처분을 판단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A씨를 계속 해상에 방치했던 북한 단속정은 오후 9시 40분쯤 ‘상부’의 지시로 A씨를 사살했다. 20분 뒤인 오후 10시엔 구명조끼를 입고 부유물에 떠 있던 A씨의 시신에 접근해 기름을 붓고 불태웠다고 군은 밝혔다. 북한은 시종일관 A씨와 거리를 두고 일부 접촉 시에는 방독면과 방호복을 착용했다. A씨를 일종의 코로나 감염원으로 취급해 사살한 뒤 시신을 소각 처리한 셈이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시신의 행방에 대해 “(시신을 태우는 빛이) 40분 동안 보였다”며 “그 해역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군은 이날 오후 10시 30분쯤 이와 같은 상황을 서 장관과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 보고했다.
청와대는 이 보고 직후인 23일 오전 1시쯤 대통령 비서실장과 국가안보실장, 국정원장, 국방부·통일부 장관이 참석하는 안보 관계장관 회의를 개최했다. 오전 1시 26분에는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북한과 ‘종전 선언’을 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통령 연설이 전 세계에 방송됐다. 북한의 A씨 사살·시신 훼손 직후에도 종전 선언 연설이 그대로 방송된 데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당시 정보의 신빙성을 분석하는 관계장관 회의가 열리던 상황”이라며 “그 상태에서 유엔 연설을 수정하거나 하는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했다.
대통령에게 A씨의 사살·시신 훼손이 정확히 보고된 건 23일 오전 8시 30분이다. 대통령은 보고받고 2시간 30분 뒤인 오전 11시 신임 군 수뇌부를 접견했는데, 이 자리에서 “강한 국방력의 목표는 전쟁의 시기는 당연히 이기는 것이고, 평화의 시기는 평화를 지켜내고 평화를 더 발전시키는 것”이라며 “평화의 시대는 일직선으로 나 있는 길이 아니다”라고 했다.
북한과의 소통 시도는 23일 오후 4시 35분이 돼서야 이뤄졌다. 우리 군은 유엔군사령부를 통해 북한에 이 사건과 관련한 사실 관계를 확인해 달라는 내용의 전통문을 전달했다. 하지만 북한은 아직까지도 답을 하지 않고 있다. 국민에게 이 사실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건 24일 오전 11시였다. A씨 사살·시신훼손 37시간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