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국내에 입국한 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리대사는 2018년 11월 아내와 함께 공관을 이탈해 잠적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조 전 대사대리의 잠적 사실은 지난해 1월 초 처음 알려졌고, 이후 행적에 대해선 뚜렷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이탈리아 정부에 신변 보호와 함께 제3국 망명을 요청했다는 등 다양한 관측이 나왔다.
조성길은 2015년 5월 이탈리아 현지에 부임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2017년 9월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하자 한 달 뒤 문정남 당시 대사(현 시리아 대사)를 추방했다. 이후 3등 서기관이던 조성길이 1등 서기관으로 승진해 대사대리 역할을 해왔다. 조성길은 3년 임기가 끝난 후 2018년 11월 말 본국으로 귀국할 시점에 망명에 나섰다. 조성길은 북한 외무성에서 잘나가던 엘리트 외교관으로 알려졌다. 북한 외무성 유럽국에서 조성길과 함께 일한 적이 있다는 태영호 의원은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조성길은 아버지와 장인이 모두 대사를 지낸 외교관 집안 출신”이라고 했다.
유럽의 한반도 전문가인 앙투안 봉다즈 프랑스 전략연구재단(FRS) 연구위원은 지난해 1월 본지 인터뷰에서 잠적한 조성길 대사대리에 대해 “부친과 장인이 모두 대사급 외교관을 지낸 유력 가문 출신인 조성길이 북한의 유력 인사들을 많이 접해본 데다 최근의 북한 엘리트 계층 동향을 자세히 파악하고 있을 것”이라며 “(조성길의) 아버지가 북한 노동당에서 조직 관리 역할을 맡은 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고위급 탈북 인사들 속에선 “조성길의 부친이 조연준 노동당 검열위원장”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이런 특수한 배경 때문에 조성길은 유럽에서 김정은의 사치품 조달을 책임진 것으로 알려졌다. 조성길의 망명 원인이 전방위 대북 제재로 사치품 등 물품 조달에 차질을 빚게 되자 처벌이 두려워 피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조성길의 망명에 ‘자유조선’(옛 천리마민방위)이 관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자유조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2017년 2월 말레이시아에서 암살당한 뒤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 일가를 구출해 제3국으로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해 4월 조성길 전 대사대리는 2018년 11월의 어느 날 직원들에게 “산책을 다녀오겠다”며 아내와 함께 로마의 북한대사관을 빠져나온 뒤 대사관 근처에 대기하던 차량에 올라탔다"며 “자유조선 회원이 모는 차였다”고 보도했다.
망명 당시 조성길은 공관에 딸을 남겨두고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공관에 남겨진 조성길의 딸에 대해선 강제 북송(北送)설 등 각종 설이 제기됐다. 일각에선 조성길의 딸이 북한에 강제 송환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귀국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이탈리아 유력 일간지인 라 레푸블리카는 지난해 2월 ‘북한 사회의 이데올로기에 투철했던 조 전 대사대리의 17세 딸이 부모를 배신하고 자발적으로 북한으로 돌아갔다’고 보도했다. 조성길 부부가 2018년 11월 10일 잠적했고 그의 딸은 11월 14일 북한으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고위 외교관의 망명은 2016년 7월 태영호 전 주영(駐英) 북한 공사 망명 이후 2년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