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외교·안보 라인 핵심 인사들이 최근 서울 모처에서 오찬 회동을 하고 미·중·일·러 등 4강 외교 현안과 대북 정책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6일 알려졌다. 이 회동에는 청와대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서훈 국가안보실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 장관급 인사 4~5명이 참석해 주요 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 회동에 없었다. 정부 소식통은 “이날 회동에 강 장관은 애초부터 초청받지 못한 것으로 안다”면서 “강 장관은 평소에도 해외 출장이나 외국 장관들과의 코로나 방역 협의 전화 통화로 일정이 빠듯해 애초 오찬 참석 대상에서 열외된 것 같다”고 말했다.

강경화(오른쪽) 외교부 장관과 이인영(왼쪽) 통일부 장관이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영상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강 장관은 최근 외교 현안과 대북정책을 논의하기 위한 정부 외교·안보 라인 핵심 인사들의 회동에 초대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강경화 배제’ 현상은 ‘북한의 우리 국민 총살 사건’ 대응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강 장관은 사건 직후인 지난달 23일 새벽 청와대에서 열린 청와대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국제법 위반 소지가 크고 대북·대미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사안이었지만, 강 장관은 사건 발생 이틀째인 23일 오후 언론 보도를 통해 해당 사실을 알았다.

국회 녹취록 등에 따르면, 강 장관은 지난달 25일 국회 외통위 회의에서 “23일 낮이었던가,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 인지했다”면서 “(베트남 출장을 다녀와 21일 이후부터) 재택근무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3일 새벽 1시, 오전 8시 등 두 차례의 관계장관회의에 불참했다”고 말했다. 안보실에서 제대로 연락도 하지 않아 외교부는 강 장관 대신 최종건 1차관이나 이태호 2차관 등을 해당 회의에 보내지도 못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강 장관이 해외 출장 후 휴가 중이어서 참석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외통위에서 국민의힘 조태용 의원이 “이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을 주무 부처 장관이 모르고 있었느냐”고 묻자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강 장관은 “간단하게라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냐”는 질문에도 “몰랐다”면서 “안보실에 (다음부터 그런 회의에 불러달라고) 관련 요청을 하겠다”고 했다. 외교가에선 “외교 수장이 주요 외교안보 정보에서 이렇게 배제된 전례는 찾아보기 어렵다”면서 “정말 외교장관이 필요한 ‘진짜 외교 현장’에서 강 장관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나왔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다른 나라 외교 수장들은 빈번히 대면 외교를 펼치고 있지만, 강 장관의 대면 외교 실적이 저조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국민의힘 박진 의원이 외교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강 장관은 올해 5회 출장을 통해 미국·독일·스위스·영국·베트남 등 5국을 방문하는 데 그쳤다. 이 가운데 양자회담은 영국 보건복지부 장관 면담, 독일 외교장관 대화, 베트남 외교장관 회담 등 3회뿐이었다. 반면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같은 기간 출장 횟수 15회, 방문 국가는 38국이었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8회 출장을 하며 16국을 방문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5회 출장에 16국을 방문했다. 정부업무평가위원회는 작년 장관급 기관별 평가에서 외교부에 대해 S·A·B·C·D 가운데 최하위급 점수인 'C'를 줬다. 강 장관 취임 전 외교부는 중간 등급 평가를 유지해왔다.

‘외교 실종’ 우려 속에 강 장관 남편의 ‘코로나 외유’ 문제로 일각에선 강 장관에 대해 ‘국감 이후 교체설’이 나오고 있다. 강 장관은 그동안 ‘최초의 여성 외교부 장관’ ‘세련된 행사 소화력’으로 현 정부 이미지 쇄신에 기여했지만, 최근 들어 ‘다주택 논란’ ‘조직 기강 해이’ 등 크고 작은 문제로 오히려 정권에 부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 장관이 현 정부와 임기를 마치는 ‘5년 장관’이 될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정부 소식통은 “여러 논란에도 문재인 대통령의 강 장관에 대한 신뢰는 여전하다"며 “떠밀리듯 교체하지 않는다는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