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주미(駐美)대사관 국정감사’는 초반 정책 관련 질의응답이 원활히 오가며 진행됐지만, 중반 이후 이수혁(71) 주미 대사의 거듭된 불량 태도 논란으로 고성이 오가는 등 파행(跛行)을 겪었다.
이수혁 대사는 야당 초선 의원들에게 “예의가 없다” “질문이 적절치 않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다” “역사를 알면, 그렇게 단순하게…” “그게 무슨 관계가 있겠나” “경우에 맞지 않는 질문” 이라며 질문 자체를 거부하거나 질문을 이어가려는 의원의 말을 중간에 끊고 자기주장을 펴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송영길 위원장이 이 대사에게 “그러지 마라” “논쟁적으로 가지 마라” “고정하시라”며 여러 차례 주의를 줬다. 그런데도 이 대사는 “아니, 그게 아니라”며 계속 목소리를 높여, 위원들의 집단 항의를 받는 상황도 벌어졌다. 이 대사는 초선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이 질의할 때는 정면을 주시하지 않고 시선을 엉뚱한 곳에 두거나 위아래를 두리번거리는 등 집중하지 않는 듯한 태도도 보였다.
이 대사는 12일 화상으로 진행된 국감이 중반쯤 지나, 지 의원이 질문할 때부터 이전과 달리 성실한 답변보단 질문 자체를 공격하는 태도로 전환했다.
이 대사는 지 의원이 미중 갈등과 관련 정부의 대응에 대해 질문하자 “미중 양측이 선택하라고 압박한다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라고 제가 묻고 싶다”고 질문을 되받아쳤다. 이 대사는 그러면서 얼마 전 자신이 ‘이제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국가’라고 한 발언과 관련 “주권적 결정을 하자, 그런 자부심을 갖자, 미국도 우리 능력을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라며 길게 설명을 했다.
이에 지 의원이 “말뜻을 잘 알겠다” “질문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대사는 “우리 지 의원님도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고 하는데요”라며 지 의원의 말을 가로막았다.
지 의원이 “하나만 여쭤보겠다”면서 “중국이 미국과 갈등하게 된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했다. 그러자 이 대사는 “아니…”라며 재차 지 의원의 질문에 문제 제기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지 의원은 “대사는 정치인이 아니다. 국가를 대표한다”면서 설명을 이러가려고 했다. 그런데도 이 대사는 다시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큰 소리로 말하며 지 의원의 질의를 경청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위원들 사이에서 이 대사 태도에 지적이 나오자, 송영길 위원장은 “나중에 충분히 설명하십시오. 시간 드리겠다”면서 이 대사를 자제시켰다.
이수혁 대사는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도 불량한 태도로 일관해 위원장의 지적을 받았다.
이 대사는 조 의원이 ‘미국이 비핵화 진전이 담보되지 않는 종전선언을 지지하느냐. 단답형으로 말해달라’고 하자 단답형으로 말하지 않고 비핵화 진전의 의미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며 질문의 전제 사항을 따지기 시작했다. 이에 조 의원이 “비핵화 진전이 뭔지 따지면 한도 끝도 없다. 비핵화 진전이 따라오지 않는 종전선언을 미국 정부가 지지하느냐”고 재차 물었다.
그런데도 이 대사는 “가상의 질문”이라고 불편한 기색을 보였고, 이에 조 의원은 “(제가) 외교부 후배인데 죄송하다”며 자세를 낮추면서도 같은 질문은 다시 한번 던졌다.
이 대사가 “왜 가상적인 질문을 하느냐”고 큰소리를 치며 맞받자 송영길 위원장이 “논쟁 식으로 하지 말고 그럴 때는 가상적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겠다고 하시면 된다”고 지적했다.
조 의원은 비핵화와 종전선언을 연계시켜온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유엔연설 등에선 종전선언을 꺼내면서 비핵화 얘기를 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한국 정부의 입장이 바뀐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와서 물어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사는 “여전히 가상적 질문”이라며 답을 피했다.
이어 조 의원은 미 하원에 제출된 종전선언 촉구 결의안을 거론하며 “읽어봤느냐”고 하자 이 대사는 “안 읽어봤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송 위원장이 다시 개입해 “외교부 선후배가 아니라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질의하는 것”이라고 주의를 줬다.
그러나 이 대사는 “읽어봤느냐고 물어보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이 “(태도가) 불량하다”며 이 대사를 질책하는 등 야당 의원들이 거세게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
앞서 이 대사는 정 의원이 미국이 ‘쿼드 플러스’에 한국 참여를 원하고 있지 않으냐고 질문하자 “너무 과잉 해석을 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을 초청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한 취소가 쿼드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이며 따지기도 했다. 이에 정 의원이 “왜 목소리를 높이느냐” “성을 내느냐”고 하는데도 이 대사는 “경우에 맞지 않는 얘기를 하신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이에 정 의원은 사과를 요구했고, 송 위원장도 “국민을 대표하는 헌법기관의 질의이니 피감기관 장으로서 자세를 취해달라. 논박하는 것은 적절한 자세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이 대사가 이날 보인 불량한 태도가 이 대사의 평소 권위적 태도뿐 아니라 정책 관련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휘말리지 않고 피하기 위해 꼼수를 부린 것이란 말도 나왔다. 이 대사는 이날 일본의 소녀상 방해 활동에 한국 대사관과 외교부가 손을 놓은 것 아니냐는 질책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로부터 받았다. 이에 그는 국감 막바지에 “일본 쪽에서 (소녀상) 철거를 시도하면 정부 차원에서 적극 대응하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며 수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 대사가 비핵화와 종전 선언 관련한 야당 의원 질의에는 가정의 질문을 하지 말라고 해놓고, 소녀상 대응책과 관련해선 ‘일본이 철거를 시도하면’이라는 가정의 상황을 설정해놓고 ‘적극 대응하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며 마치 금방 대응에 나설 것처럼 느껴지도록 하는 말장난을 썼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대사는 주미 대사 이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시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표리부동(treacherous)한’ 인물로 묘사해 논란을 일으킨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