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재학 중 외무고시에 수석 합격해 수년간 외교부 생활을 한 30대 외교관이 올여름 돌연 “외교부를 떠나겠다”며 사표를 냈다. 탁월한 업무 능력뿐 아니라 평소 동료와 관계도 원만한 직원인 그의 사직 소식에 “왜?” “무슨 일 있대?”라며 다들 놀랐다.
하지만 그가 구글(Google)로 이직하기 위해 퇴사하는 것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축하한다” “잘가” “거기서도 잘해”라는 말이 뒤이었다. 그는 구글에서 유튜브 관련 업무를 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반응도 있었다. “외교부 대신 구글이라니…” “외교관보다 구글 직원?”이라는 말도 나왔다. 국민의 세금으로 해외 연수를 누리고 커리어를 쌓은 외교관이란 공직자의 외국 기업행을 놓고 세대와 가치관에 따라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그의 퇴사 소식이 알려지기 몇 달 전에는 인기 공관인 도쿄 주재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서기관이 역시 사표를 내 외교부 젊은 외교관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이 서기관 역시 서울대 재학 중 입부한 전도유망한 청년 외교관이었다. 그는 외시 폐지 후 생긴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에 합격해 국립외교원에 들어가서 1년간 훈련을 받고 졸업할 때 최우수 성적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외교부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외교부를 떠난 그는 현재 서울 소재 로스쿨을 다니며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 2월에는 잘나가던 중견 외교관도 사표를 냈다. 주(駐)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 대표부의 40대 중반 참사관이 공관 근무 도중 사직서를 내고 삼성전자 상무로 갔다. 2000년 우수한 성적으로 외시에 합격한 그는 제네바대표부 참사관, 외교부 개발협력과장 등을 거쳐 지난해부터 프랑스 파리에 있는 OECD 대표부에서 근무했다. OECD 대표부는 외교부 통상 전문 외교관들이 앞다퉈 가려는 공관이다. 이렇게 엘리트 코스를 거친 중견 참사관이 60세까지 주요국 대사(大使) 등 주요 직책을 맡으며 근무할 수 있는 외교부를 떠나 민간 기업으로 이직하자, 일각에선 “외교부의 위상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평이 나왔다.
지난해엔 외교부에서 소위 잘 나간다는 소릴 듣던 김일범 북미 2과장이 SK그룹으로 이직했다. ’1999년도 외시 33회' 출신인 김 과장은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통역을 전담해왔다. 그는 김세택 전 오사카 총영사의 막내아들로 ‘부자 외교관’이자, 유명 배우 박선영의 배우자로도 익히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한 고위 외교관은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화되면서 외교관 출신들이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늘고 있다는 점과, 직업 외교관으로서 자부심이 갈수록 낮아지는 것이 서로 맞물리고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정권의 입맛에 따라 실력 있는 외교관이 좌천되는 일이 반복되는 점도 유능 외교관의 외교부 이탈 현상과 무관치 않다” “외교부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졌다"는 말도 나왔다. 외교부는 지난 2~3년사이 ‘구겨진 태극기 의전 사고' ‘한국 외교관 성 비위 사건’ ‘외교장관의 다주택과 세테크 논란, 배우자의 코로나 요트 외유' 등 각종 문제로 여러 차례 조롱의 대상이 됐다.
올해에도 외교부에선 유럽 주요국 대사로 나가거나 차관으로 영전할 것으로 알려진 고위 외교관이 ‘품행’문제라는 애매한 이유로 국내 지방도시의 5급 계약직 자리로 좌천하는 일 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