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여권 발급비 5만 3000원에서 1만5000원을 별도로 떼 ‘국제교류기여금’이란 이름으로 모금하지만 정작 이 자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19일 나왔다.
또 이 자금을 쓰는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교류재단은 규정을 어기며 부적절한 대상에게 명절 선물을 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가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업무실태 및 세금 사용 내역을 좀 더 철저하게 감사(監査)해 책임자를 처벌하고 잘못된 관행은 이번 기회에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교류기여금 제도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국제교류재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재단은 국민이 10년짜리 복수 여권을 발급 받기 위해 5만3000원을 낼 때 이 중 1만5000원을 ‘국제교류기여금’으로 떼어가고 있다. 5년짜리 여권은 발급비 4만5000원 가운데 1만2000원이 국제교류재단 손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모금된 금액은 2010년부터 올 9월까지 약 10년간 482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여권 발급비에 ‘국제교류기여금’ 모금을 끼워 넣어 국민이 여권 발급비를 30% 가량 더 비싸게 내게끔 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교류기여금으로 1만 5000원을 추가로 내지 않으면 현재 5만3000원인 여권 발급비는 3만8000원으로 낮아져 부담이 덜해진다.
국제교류재단 대외협력부 소속 직원은 ‘미국·일본·중국 가운데 우리처럼 여권이나 여행증명서를 통해 모금하는 사례가 있느냐’는 태영호 의원실 질의에 “그런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답변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은 이렇게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지만, 이 재단의 고위 관계자들은 개인적 선물을 할 수 없다는 지침을 어기고 3년간 800만원 규모의 명절선물을 구입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교류재단의 최근 3년간 업무추진비 자료에 따르면, 이 재단의 이사장 및 이사 2명은 관계기관과 고위 공직자 등 186명에게 총 13차례 명절 선물을 보냈다. 이사장과 이사 2명 등은 선물 제공 명단을 작성하고 스스로 결제해 재단 내 경영관리부에서 선물을 구입한 후 배송했다. 선물은 주로 외교부 고위 공무원, 방송사 사장, 회계법인 상무, 주한국 대사, 지자체 공무원에게 전달됐다.
특히 국제교류재단의 회계감사 업무와 무관한 대형, 소형 회계법인 2곳의 임원에게도 같은 방법으로 선물이 배송됐다.
명절 선물을 구입하기 위해 사용된 관서업무추진경비 지침상 개인적인 선물은 구입할 수 없다. 명절 선물 구입에 사용된 법인카드의 ‘사용 및 관리 지침’ 제3조(사용 목적 및 제한)에 따르면 법인카드를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이 밖에 임직원 행동강령 가운데 금품 등의 수수 금지 내용이 담긴 제22조 7항에 따르면 ‘공무원 또는 정치인 등에게 금품 등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