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주시애틀총영사관 소속 부영사가 공관 직원들에게 각종 욕설과 폭언을 퍼부었지만 외교부가 제대로 조사도 않고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는 지적이 20일 나왔다. 앞서 외교부는 외교관의 뉴질랜드인 성추행 사건과 이에 대한 부실 대응으로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적을 받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관행을 고쳐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A 외교관 성추행 혐의에 대한 뉴질랜드 매체 뉴스허브 보도 장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실이 외교부 감찰담당관실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와 제보자로부터 받은 제보 등을 종합하면, 주시애틀총영사관 A부영사는 2019년 부임한 이후 직원들에게 “XX새끼야”라고 욕설을 하거나 “네가 퇴사하더라도 끝까지 괴롭힐 거다”라고 말을 일삼았다. 또 “이 월급으로 생활이 가능하냐”, “내가 외교부 직원 중 재산 순위로는 30위 안에 든다”라고 했다.

엽기적 발언도 있었다. A부영사는 “인간고기가 너무 맛있을 것 같다, 꼭 인육을 먹어보려고 한다”라고 했다. 또 “우리 할머니가 일본인인데 우리 할머니 덕분에 조선인들이 빵을 먹고 살 수 있었다”라는 말을 했다고 제보자들은 전했다.

이에 2019년 10월 A부영사에 대한 신고가 접수됐다. 직원들은 폭언과 욕설 외에도 사문서위조, 물품단가 조작, 이중장부 지시, 예산 유용, 휴가 통제, 시간 외 근무 불인정 등 16건의 비위행위를 신고했다.

일러스트=정다운

하지만 감찰에 나선 외교부 감사관실 소속 감찰담당관실은 주시애틀영사관 소속 영사 및 직원들로부터 직접 참고인 진술을 듣지 않고 서면으로만 문답을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감찰담당관실은 2019년 11월 24~29일 감찰을 벌인 후 2020년 1월 이메일로 추가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후 외교부 감찰담당관실은 지난 16일 특정 직원에 대한 두 차례의 폭언 및 상급자를 지칭한 부적절한 발언 한 건 등 총 3건만을 확인했다는 조사결과를 이 의원실에 제출했다. 이 의원실은 A부영사관이 이 세 차례의 언행 비위로 장관 명의의 경고조치를 받았고, 주시애틀총영사관은 기관주의 처분을 받았다고 밝혔다. A부영사는 현재까지 해당 공관에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김인철 대변인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 외교관의 뉴질랜드 국민 성추행 논란과 관련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제보자들은 A부영사가 시애틀에 부임하기 전까지 외교부 감사관실에 근무했기 때문에 외교부가 감사관실의 명예 실추를 막기 위해 ‘제식구 감싸기’에 나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직원들로부터 직접 진술을 듣지 않은 것은 A부영사에게 불리한 진술이 있을 것을 우려한 사전 차단 조치라고 주장했다.

이태규 의원. /뉴시스

이태규 의원은 “지난 2019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은 ‘전(全) 재외공관 소속 행정직원에 대한 부당대우 점검 등 엄정한 재외공무원 복무관리’를 지시했다”며 “외교부 내 공무기강 해이와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외교부 내 비위행위 근절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실제 예시”라고 했다.

외교부가 해당 사건과 관련해 자료 제출에 소극적으로 임했다는 점도 지적됐다. 이 의원실은 “해당 사건과 관련해 감찰 서류 제출 또는 열람을 요청했지만 이를 모두 거부당했다”며 “감찰 과정이 제대로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합리적 의심을 소명하지 못했고, 결국 축소·은폐 의혹을 증폭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