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회의 반복된 지적에 재외 공관의 외제차 사용 비율을 낮추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대사(大使) 등 고위 외교관 상당수는 고급 외제차를 고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이유 등으로 재외 공관 차량 전체 689대 가운데 143대(21%)는 여전히 외제차였다. 특히 주영(駐英) 대사관은 메르세데스 벤츠가 3대, 폴크스바겐 2대 등 전체 운용 차량 7대 가운데 5대가 외제차였다. 국회 여야의 지적에도 상당수의 한국 대사들이 여전히 외제차에 ‘태극기’를 꽂고 외교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벤츠 자료사진. /벤츠

본지가 입수한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서면·구술 자료에 따르면, 외교부는 2018년 전후 국회 예결위·상임위·예정처·국정감사를 통해 국산 차량 비율 제고 및 예산 절감 노력 필요성을 지적받았다. 이에 외교부도 국회의 지적을 수용하고 후속 조치에 착수했다.

일부 차량 교체가 됐지만, 외교부가 태 의원에 제출한 최신 자료에 따르면, 2019년 12월 기준 재외 공관 공용차량의 국산화 비율은 79%(546대)에 그쳤다. 여전히 143대(21%)는 외제차였고, 이 대부분은 대사·공사 등 고위 외교관 차량에 집중된 것으로 파악됐다.

주영 대사관은 현재 보유한 차량 7대 중 5대가 외제차였다. 국산차 2대는 행정차량으로 배기량 2199cc의 기아차와 2497cc의 현대차였다.

공관장(대사) 차량은 배기량 3498cc의 메르세데스 벤츠 S350, 의전 차량은 1796cc의 메르세데스 벤츠 E250, 공관 차석 등이 이용하는 제1호 행정차량은 1991cc의 메르세데스 벤츠 E200였다.

나머지 셔틀용 행정차량 2대도 모두 폴크스바겐으로 외제차였다. 이 가운데 폴크스바겐 1대는 최근 구입한 것으로 곧 매각할 국산차 기아차를 대체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산차 비율 제고’ 방침에도 국산차는 오히려 매각하고 외제차를 구입하며 국회요구와 정부 방침에 ‘역행’한 것이다.

캐나다 대사관은 전체 5대 가운데 행정·의전용 차량은 모두 국산차였지만, 공관장 차량은 메르세데스 벤츠 S400으로 역시 외제차였다. 뉴질랜드 주재 한국 대사의 차량은 BMW 740i였다. 그 외 다른 공관도 대사·총영사 등 공관장의 차량은 외제차인 경우가 많았다.

BMW 7 Series 자료사진.

내년 공관 차량 구입 예산은 47억원(총 87대)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외교부는 내년 공관장용 차량 총 26대를 20억원을 들여 살 계획이다. 의전용 차량은 8대(4억4000만원), 행정용 차량은 53대(22억원)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외교부는 이 같은 차량 교체 목적은 “노후 공용차량의 적기 교체를 통해 외교 업무의 원활한 수행과 공관원의 안전한 업무 여건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또 “국격을 높이고 국산 차량의 이미지 제고에 기여하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2017년 6월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빌딩에 마련된 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외교부는 차량 교체 사업에도 차질을 빚는 것으로 파악됐다. 외교부는 “현대자동차가 내부 문제로 차량 공급을 제대로 못 해주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2018년도 외교부가 차량 구입비로 편성한 예산 가운데 5억여원이 사용되지 못하고 그만큼의 차량 공급이 공관에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열린 통일부 등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태 의원은 “연간 수십억씩 예산을 들여서 재외공관 차량을 국산화하는 사업을 국민 세금으로 진행하는데 외교부가 현대자동차 회사 탓만 하고 있다”면서 “외교부는 재외공관 공용차량의 효율적인 운영·관리를 통해 재외공관의 원활한 외교업무 수행 지원을 위해서 재외공관 차량 구입 및 교체 사업에 차질이 없도록 사업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