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는 22일 트럭 31대를 동원해 경북 성주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기지에 공사 장비를 반입했다. 국방부가 대규모 장비를 육로(陸路)로 성주 기지에 들여놓은 건 2017년 사드가 임시 배치된 이후 처음이다. 이 과정에서 사드 반대 시위대가 기지 입구를 막고 장비 반입을 막아 충돌이 빚어졌다. 결국엔 경찰이 시위대를 해산하고 장비가 반입됐지만, 단순 공사에도 반대 세력이 큰 목소리를 내면서 한·미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는 모양새를 보이게 됐다.
미군은 시위대에 의해 고립된 성주 기지의 리모델링을 지속적으로 요청해왔다. 하지만 육로가 시위대에 막혀 공사는 지지부진했고, 작년엔 임시 컨테이너 시설을 헬리콥터 등으로 공수하기도 했다. 군 관계자는 “기존 골프장 클럽하우스였던 곳을 정식 공사 없이 사용하다 보니 시설이 열악하기 짝이 없다”며 “미측은 이런 점에 대해 지속적으로 항의해왔다”고 했다. 이 같은 미측의 불만은 지난 14일 열린 한미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도 “성주기지 사드 포대의 안정적인 주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장기적인 계획을 구축하기로 했다”는 내용으로 반영됐다.
문제는 이번 성주 기지 장비 반입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이 이상 징후를 보이는 한미 관계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미측은 성주 기지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 ‘병사 인권’ 문제까지 거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미 국무부는 21일(현지 시각)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이 오는 25일부터 30일까지 인도, 스리랑카, 몰디브,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4국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가 추진해온 폼페이오 장관의 방한(訪韓)이 두 번 연속 무산된 것이다. 앞서 폼페이오 장관은 이달 7~8일 서울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방한을 취소한 뒤 도쿄에서 열린 전략다자안보협의체 쿼드(Quad) 외교장관 회의에만 참석했다. 외교부는 이날 “강경화 장관과 폼페이오 장관이 21일과 22일 두 차례 전화 통화를 가졌다”며 “(강 장관이) 가까운 시일 내 미국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아시아 순방에서 한국이 제외된 것은 이례적으로,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한국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쿼드나 클린네트워크 등 반중(反中) 캠페인 참여를 압박하는 미국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불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정부 안팎에선 공동기자회견까지 취소된 SCM의 여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악재만 쌓이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현 정권에서는 임기 내인 2022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미국 조야에선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주류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 역시 1년 넘게 타결되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애덤 스미스 미 하원 군사위원장은 SCM에서 ‘주한미군을 현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문구가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매우 중요한 동맹을 흐트러지게 하고 있다”고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유엔 총회에서 언급한 종전선언이 북한의 핵 포기 없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북한의 비핵화에 남북 사이의 상태를 바꿀 문서(종전선언)가 분명히 포함된다”고 밝혔다. 종전선언이 비핵화에 우선할 수 없다는 기존 미국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여권에서 제기되는 ‘선(先) 종전선언’ 주장에 반대 입장을 밝힌 것으로 해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