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의원연맹 회장인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과 국민의힘 이채익 의원 등 여야(與野) 의원 7명이 12일 2박 3일 일정으로 방일(訪日)했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8~11일 방일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 등 일본 요인들을 만나고 귀국한 지 하루 만이다. 청와대는 부인했지만,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은 ‘서훈 국가안보실장의 내주 방일설’도 보도했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이날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외무성 사무차관과 전화 통화를 했다. 당·정·청의 대일(對日) 외교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모양새다. 정부는 오는 12월 한·중·일 정상회담의 서울 개최도 추진 중이다.
김진표 의원은 이날 나리타(成田)공항에서 취재진을 만나 “양국 정상이 만나 강제징용 등 현안에 대한 정치적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년 7월로 연기된) 도쿄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되고 또 이를 계기로 양국 교류가 한층 활발해지면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일 양국 의원들은 이날 합동 간사회의를 열어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지원을 위한 교류·협력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한일의원연맹 대표단은 13일엔 스가 총리를 예방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립 여당인 공명당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대표, 제1 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대표도 만날 예정이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최근 방일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교 소식통은 “서 실장은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함께 서울 또는 도쿄에서 한·미·일 대면(對面) 회의를 하는 방안을 고려했다”며 “하지만 미 대선과 코로나 재확산 등으로 여의치 않은 상황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서 실장은 지난 6일 화상으로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를 했다. 정부 관계자도 이날 “서 실장이 일본에 가려 했던 것은 맞는다”면서 “하지만 이런저런 일로 취소하게 됐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의 ‘서 실장 방일설’ 보도도 이런 과정에서 나온 것이란 관측도 있다.
정부가 최근 대일 관계 개선에 역량을 집중하는 데는 내년 7월 도쿄올림픽을 꽉 막힌 남북 관계의 돌파구로 삼으려는 계산이 깔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 소식통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이 참가하며 얼어붙은 남북 관계가 풀린 상황이 도쿄올림픽에서 재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지원 원장은 이번 방일에서 스가 총리 등에게 도쿄올림픽과 관련한 협력 방안에 대해 언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풀어볼 계획을 갖고 미국과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가 총리도 취임 연설에서 북한에 관계 개선 의지를 내비쳤다. 최종건 차관도 이날 아키바 사무차관 통화에서 강제징용·수출 규제 등 양국 현안과 함께 “도쿄올림픽, 한반도 상황과 관련 양국이 긴밀히 소통하고 대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한·미·일 3국 협력을 강조하는 바이든 정부가 곧 들어서는 것도 여권이 한·일 관계 개선을 서두르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박 원장이 방일해 ‘김대중·오부치 선언’과 같은 ‘문재인·스가 선언’의 필요성을 띄운 것도 이런 기류를 반영한 것이란 관측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민주당 윤건영 의원도 이날 한 방송에 나와 ‘한·일 정상 간 빅딜’ 해결법을 강조했다. 여권 관계자는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피해자 입장을 중시한다는 정부 기조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하지만 악화한 한·일 관계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1일 청와대에서 가진 외교안보 분야 원로·특보들과의 간담회에서 한·일 관계 개선과 관련해 “현재 상황에선 쉽지 않다”는 취지로 고충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