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알셉) 참여는 격화하는 미·중 갈등 속에 바이든 행정부가 새로 출범한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에 외교적 시험대가 될 수 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오바마 정부에서 부통령이던 시절 RCEP과 대립 구도를 형성했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를 적극 추진했다. 따라서 앞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폐기했던 TPP를 되살려 한국에 동참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5일 “필요하다면 (TPP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RCEP과 TPP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TPP 가입을 적극 검토할 것을 주문했다.
또 한국의 RCEP 참여는 경제 영토의 확장이란 면에서 한국 경제에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전 세계 인구·GDP(국내총생산)·교역의 약 30%를 차지하는 시장이 열리고, 특히 FTA(자유무역협정) 미체결국인 일본과 FTA를 맺는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한국은 미·중·일·EU 등 세계 주요국과 모두 자유무역협정을 갖게 됐다.
RCEP 체결은 한반도 주변의 미·중 경쟁 구도를 한층 복잡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RCEP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 중국을 배제한 채 추진하던 TPP에 맞서 중국이 대항마로 내세운 무역 질서의 한 축이다. 한때 ‘RCEP이냐 TPP냐’는 아태 지역 경제 질서 주도권 다툼에서 ‘미·중 어느 편에 설 것이냐’는 말과 같았다.
하지만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집권 직후 TPP를 탈퇴하면서 ‘RCEP 대 TPP’ 구도가 크게 출렁였다. 일본 등 나머지 국가가 CPTPP(포괄적·점진적 TPP)로 이름을 바꿔 2018년 공식 서명했지만, 미국의 불참으로 존재감은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정책 뒤집기’와 ‘오바마 정책 계승’을 다짐한 바이든 당선인의 대선 승리로 미국이 CPTPP에 복귀할 가능성이 커졌다. 주목되는 건 중국 견제용 안보 협의체 쿼드(Quad), 경제번영네트워크(EPN) 등 트럼프 행정부의 ‘반중(反中) 캠페인’을 바이든 행정부도 계승할 것이 확실시된다는 점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지난 6일 펴낸 보고서에서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역내 다자무역협정으로 CPTPP를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 등에 CPTPP 가입을 요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가 CPTPP 가입을 요구하더라도 과거보다 외교적 부담은 덜한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TPP 탈퇴로 ‘RCEP이냐 TPP냐’의 대결 구도가 희석됐기 때문이다. 실제 RCEP과 TPP에 모두 가입한 나라만 해도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7국에 달한다. 일본과 호주는 쿼드 멤버이기도 하다. 쿼드에 동참 중인 인도의 경우 대중 무역 적자 확대를 우려해 RCEP에 불참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RCEP과 CPTPP는 대립이나 대결적 관계가 아닌 상호 보완적 관계”라며 “두 협정 모두 아태 지역의 다자 무역 체제를 지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바이든 당선인은 아직 CPTPP에 참여한다, 안 한다는 입장을 내지 않았다”며 “필요하다면 (CPTPP에) 들어갈 수 있겠지만, 지금 결정할 시기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어느 편이다 생각하지 말고 중요한 국제 네트워크에 들어가서 역할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CPTPP는 일본이 주도하는 것인데 일본도 RCEP에 들어가는 등 양쪽에 발을 담갔다”고 말했다.
다만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바이든 당선인도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 정책을 공약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집권 초기부터 CPTPP에 서둘러 복귀하고 한국 등에 가입을 독려하진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