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가 주(駐)뉴질랜드 한국 외교관의 성추행 사건이 지난 4월 국내외에 알려진 후 대사관 직원인 성추행 피해자에게 “당신의 과거 비위 행위가 파악됐다”며 징계 조사에 착수한 사실을 통보했던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통보문에는 “이게(비위 행위) 사실이면 해고”라는 표현도 들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가 성추행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게 되자 ‘별건(別件) 조사'로 피해자를 압박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주뉴질랜드 한국 대사관은 지난 4월 28일 성추행 피해자이자 이 대사관 행정직원인 뉴질랜드인 W씨에게 “초과 근무비를 부당 신청한 정황이 파악됐다”며 징계 조사(Disciplinary investigation) 방침을 통보했다. 대사관은 W씨가 동료 직원에게 심한 욕설을 했다는 신고도 접수됐다며 심각한 비위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사관은 그러면서 이 두 가지 문제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당신은 해고될 수 있다(you could be dismissed)” “대사관이 당신과의 고용 계약을 깰 수 있다”는 취지의 입장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사관이 이 같은 통보를 한 시점은 뉴질랜드 법원이 성추행 혐의로 대사관 공사참사관이던 K씨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하고 이 사실이 현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직후다. 대사관이 피해자 측과 사인(私人) 중재 절차를 일방적으로 중단한 직후였다.
일각에선 “외교부가 이번 사건을 비공개로 처리하려다 뉴질랜드 언론을 통해 공개되자 피해자에 적극 대응하는 쪽으로 전략을 전면 수정했고, 이에 따라 ‘중재 중단’ ‘별건 조사 착수’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W씨는 징계 조사 착수 통보와 관련 대사관이 성추행 사건 해결 노력을 하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를 불량한 직원인 것 처럼 만드려 한다며 유감의 뜻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대사관 동료에게 영어로 욕설한 적은 있다고 관련 문제를 일부 인정했지만, 초과 근무 부당 신청 혐의는 관련 자료를 제출하며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지난 7월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정상통화에서 문 대통령에게 K외교관의 성추행 사건 문제를 직접 따지는 등 외교 문제로 커지자 W씨에 대한 징계 조사를 일시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뉴질랜드 대사관은 지난 4월 중단됐던 피해자 측과의 사인 중재를 30일 재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인 중재는 뉴질랜드 현지 노동법에 따른 분쟁 해결 방법이다. 피고용인이 자신에게 피해를 준 고용주에게 위로금 등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이다. 이 사건의 경우 피고용인은 뉴질랜드 행정직원이자 성추행 피해자인 W씨이고, 고용주는 주뉴질랜드 한국대사관이다.
전직 고위 감사관은 “외교부가 성추행 사건이 진행 중에 피해자를 별건으로 조사하기로 한 점을 여러 모로 부적절하다”면서 “어떤 경위로 이런 조치를 하게 됐는지 지금이라도 파악해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