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이 날로 격화하는 갈등 국면에서 각자 우군 확보를 위해 각종 협의체를 신설 또는 재강화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양측 요구에 “검토해보겠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미·중 모두에 ‘거리 두기’ 대응으로 일관하는 모양새다. 이는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를 비롯해 주요 외교안보 참모들이 “현 갈등 상황이 신냉전 구도로 전개될 수 있으니 미·중 어느 한쪽에 치우쳐선 안 된다”는 논리를 펴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상당수 외교 전문가들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핵심 동맹(미국)과 반(反)민주적 권위주의 국가(중국)를 동일선상에 놓고 대응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말한다. 미국 조야에선 “한국의 기계적 중립은 사실상 중국 편을 드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들어선 ‘기계적 중립’마저 무너지고 한국 정부가 중국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최근 왕이 중국 외교부장 방한 당시 강경화 외교장관의 반응이 대표적이다. 강 장관은 지난 27일 회담에서 왕 부장이 중국 주도의 5G 통신 구상인 ‘글로벌 데이터 안보 이니셔티브’를 제안하자 “적극적으로 연구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발표했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반(反)화웨이 캠페인’ 등 중국 견제 노선에 동참해 달라는 미국의 요청엔 “개별 민간 기업이 결정해야 할 문제”라며 뒷짐을 지는 듯한 태도를 취해왔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홍익표 의원은 30일 최근 방한한 왕 부장에 대해 “정통 외교관이기 때문에 굉장히 신사적이고 예의 바르신 분”이라고 했다. 홍 의원은 이날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왕 부장이 강 장관과의 회담에 20분가량 지각한 데 대해 “외교 관례상 지각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이같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