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의회가 앞으로 미군의 병력이나 무기를 추가 배치할 때, 해당 국가가 화웨이(華爲) 등 중국 회사의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고려해 안보 위험을 검토할 것을 요구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미 행정부가 화웨이와 ZTE(중싱·中興)를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데 이어 의회까지 나서서 주변국에 압박 수위를 높인 것이다. 국내에서도 일부 통신업체가 부분적으로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고 있어 우리 정부의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미 상·하원 군사위원회가 지난 3일(현지 시각) 합의한 2021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NDAA·국방예산법)에는 ‘위험한 5G 또는 6G 네트워크를 쓰는 주둔국에 미국 장비나 추가 병력을 영구 주둔하는 데 대한 고려’란 조항이 담긴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에는 없던 조항이다. 주둔국이 화웨이를 포함한 ‘위험한 공급자’의 5G 또는 6G 통신 설계를 사용하고 있거나 이를 의도하는 경우, 미 국방장관이 (미군) 병력·장비·작전에 미칠 위험을 고려해 의회에 보고하도록 했다. 미 의회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법안을 조만간 표결할 예정이다.

이 법은 ‘위험한 5G 또는 6G 통신 설비·소프트웨어·서비스’가 있는 주둔국에 미군의 주요 무기 체계(major weapon system)나 대대·비행 중대·해군 전투 부대 등을 추가로 영구 주둔하는 경우에 적용된다. 미군뿐만 아니라 가족이 화웨이·ZTE를 쓰는 통신망에 직접 연결될 수 있으면 어디나 대상이 된다. 이에 따라 LG유플러스가 화웨이 장비를 일부 사용하고 있는 한국도 대상에 포함된다. 미국이 추후 한국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같은 새 무기 체계나 전략·정찰 자산, 병력을 주둔시키려고 할 때 이 조항의 적용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 의회는 또 화웨이·ZTE 통신 설비로 인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 주둔국이 어떤 노력을 했고, 미국과 주둔국 사이에 어떤 합의가 이뤄졌는지 등을 고려하라고 했다. 또 국방장관이 법안 발효 1년 안에 위험한 5G 통신망이 있는 주둔국의 작전상 위험 정도를 평가하고, 재배치를 포함한 위험 경감 조치를 의회에 보고할 것을 명시했다.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미국이 화웨이 장비 사용으로 인한 잠재적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한국에 추가적 조치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외교가에선 내년 1월 출범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에 ‘어려운 선택’을 강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중국의 스파이 활동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 정부에 화웨이의 5G 장비를 배제하라고 요구해 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 7월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지 않는 SK텔레콤과 KT를 콕 집어 “깨끗한 통신사(clean carriers)”로 표현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동통신 사업자가 특정 업체를 사용하느냐, 안 하느냐는 문제는 관계 법령상 민간 기업이 결정할 사항”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번 법안도 당장 주한미군 주둔이나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다만 외교부는 바이든 정부에서도 ‘화웨이 퇴출’ 압박이 커질 것에 대비해 동향 파악과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수 김 랜드연구소 연구원은 “워싱턴과의 안보 동맹, 베이징과의 경제 파트너십 사이에서 서울(한국)이 진퇴양난을 겪는 모양새”라고 했다.

한편 이번 법안에는 미 회계감사원(GAO)의 권고에 따라 북한의 생물화학무기 대응을 위해 미 국방장관이 1년 안에 구체적인 대비 계획을 세워 18개월 내에 이행에 옮겨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북한의 생물화학무기를 특정해 대책을 세우도록 한 내용이 국방수권법안에 포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