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건 외교부 1차관(왼쪽)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오른쪽)이 10일 저녁 서울 시내 닭한마리 식당에서 건배하고있다.. /외교부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10일 광화문 한 식당에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소주와 맥주를 곁들인 저녁식사를 했다. 외교부는 이 식당을 통째로 빌렸다.

외교부 1차관 보좌관, 외교부 북미국의 고윤주 국장, 이태우 심의관 등 여러 외교관들과 지난 8일 방한한 국무부 직원, 주한 미 대사관 직원들이 자리했다. 정세균 국무총리와 보건 당국이 코로나 대응을 위해 국민에게 양해를 구하며 8일 0시부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2.5단계로 격상하는 조치를 시행한지 사흘만이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왼쪽)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오른쪽)이 10일 저녁 서울 시내 닭한마리 식당에서 식사하고 있다. /외교부

외교부는 최 차관이 이날 식사 자리에서 비건 부장관으로부터 미 미시건 대학 티셔츠를 건네 받고 즉석에서 입은 모습의 사진도 공개했다. 비건 부장관은 미시건대 출신이다. 최 차관이 미시건대와 미식축구 라이벌인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대학원을 다닌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에 따르면 이날 자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외교부는 최 차관이 밝은 얼굴로 비건과 술잔을 부딪히는 모습의 사진도 공개했다. 외교부는 직원을 통해 이 같은 장면을 촬영하고 이를 보도용으로 배포했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왼쪽)이 10일 저녁 서울 시내 닭한마리 식당에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오른쪽)이 선물한 옷을 입고 있다. 옷에는 비건 부장관이 졸업한 미시간대 이름이 적혀있다. /외교부


최 차관이 주관한 이날 만찬은 북한 김여정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향해 ‘망언’을 했다며 모욕적 담화를 내놓은 다음 날 치러졌다.

김여정은 9일 강 장관을 겨냥해 담화를 내고 “앞뒤 계산도 없이 망언을 쏟은 것을 보면 얼어붙은 북남관계에 더더욱 스산한 냉기를 불어오고 싶어 몸살을 앓는 모양”이라며 “그 속심 빤히 들여다보인다. 정확히 들었으니 우리는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고, 아마도 정확히 계산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여정, 강경화 발언

강 장관은 지난 5일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초청으로 바레인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북한이 우리의 코로나 대응 지원 제안에 반응하지 않고 있다”며 “이 도전이 북한을 더욱 북한답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북한이 확진자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코로나 통제에 집중하는 것에 대해 “이것은 조금 이상한 상황”이라고 했다. 틀린 말이 아니지만, 북한은 이에 발끈한 것이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공식 만찬에서 김여정(왼쪽)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다/KBS화면 캡처

외교부 전직 고위 외교관은 “북한이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의 발언을 생트집잡아 모욕적인 발언을 해 큰 논란이 된 상황에서 외교부 2인자인 1차관이 이에 개의치 않고 십수명의 술자리를 벌이고 사진을 대대적으로 공개한 것은 경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며 “지금은 공직자들이 누구보다 모범을 보여야 하는 시기”라고 했다.

한 정부 관계자도 “정세균 총리와 보건 당국이 국민에게 연말 모임을 자제하고 집에 머물라고 코로나 지침을 발표했는데, 정부 고위 당국자가 서울 도심에서 저녁시간 식당을 통째로 빌려 4인 이하 소수도 아니고 10여명이 한데 모여 소주와 맥주를 마시며 잔을 부딪히는 모습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코로나로 전 국민이 힘들어 하는 상황에 맞지 않는 정부 활동”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조직력과 예산을 주무를 수 있는 고위 관료들이 공적 자원을 동원해 대형 식당을 통째로 빌리고 외부인도 통제하면서 ‘코로나 지침’ 위에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을 하루 앞둔 7일 오후 서울 주요 번화가 거리가 텅 비어있다. 왼쪽부터 서울 중구 명동 거리, 강남역 인근 먹자골목 거리, 종로구 관철동 거리 모습. /연합뉴스
지난 10월 9일 서울 광화문 일대가 코로나 확산 방지 관련 집회 및 시위를 차단하기 위한 차벽과 펜스가 설치되어 있다. /조선일보
한글날인지난 10월 9일 서울 광화문 일대가 코로나 확산 방지 관련 집회 및 시위를 차단하기 위한 차벽과 펜스가 설치되어 있는 가운데 경찰들이 보초를 서고 있다. / 고운호 기자
서울 광화문 일대가 코로나 확산 방지 관련 집회 및 시위를 차단하기 위한 차벽과 펜스가 설치되어 있는 가운데 경찰들이 보초를 서고 있다. 2020.10.9. / 고운호 기자

한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제13차 발리 민주주의 포럼’에서 “코로나19와 관련한 가짜뉴스 등 인포데믹(왜곡된 정보가 전염병처럼 퍼지는 현상) 문제는 책임 있는 민주사회 지도자들이 대응해야 할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라고 밝혔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 방침을 발표하는 모습.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