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장련성 기자 조선일보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최근 방한했을 때 대북전단살포금지법에 대한 미 행정부의 우려를 한국 측에 비공식적으로 전달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비건의 방한이 지난 8~11일로 국회에서 대북전단금지법이 통과되기 사흘 전이었기 때문에 ‘공식적’ 입장 표명은 하지 않았지만, 통과를 앞두고 이와 관련한 우려 의사를 전했다는 것이다.

WP 칼럼니스트인 조시 로긴은 이날 ‘한국의 새 전단금지법이 워싱턴의 반발을 촉발한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소식통을 인용해 이를 보도했다.

비건은 방한 기간 강경화 외교부 장관, 최종건 1차관,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을 만났다. 외교부는 비건 방한과 관련 장문의 보도 자료와 관련 사진 등을 공개했다. 하지만 이 자료와 외교부 당국자의 브리핑에서 비건이 대북전단과 관련 의견을 전달했다는 언급은 없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11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와 미국 대표단을 서울 용산구 한남동 외교공관에 초청해 격려 만찬을 주재하며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 윗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문희 북핵외교기획단장, 미미 왕 부장관 전략보좌관,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고윤주 북미국장, 루시 창 공사참사관,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강경화 장관, 비건 부장관, 알렉스 웡 국무부 대북특별부대표. /외교부 조선일보 DB
최종건 외교부 1차관(왼쪽)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오른쪽)이 10일 저녁 서울 시내 닭한마리 식당에서 식사하고 있다. /외교부 조선일보 DB

로긴은 이날 칼럼에서 법 통과가 워싱턴의 반발을 촉발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며 미국 의원들과 비정부기구들은 한국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달래기 위해 언론의 자유와 인권을 희생시키고 있음을 우려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하원 외교위 공화당 간사인 마이클 매컬 의원이 이 법이 북한의 독재정권으로 인해 수백만명의 주민에게 부과된 잔인한 고립을 심화할 수 있다며 “한반도의 밝은 미래는 북한이 한국을 좀 더 닮아가는 데 달려 있다”고 한 지난 14일 성명을 소개했다.

맨프릿 싱 미국 국제사무민주협회(NDI) 아시아태평양 국장은 “(북한 주민의) 정보 접근을 촉진하려는 이들을 범죄화하는 것은 인권 옹호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해를 끼치고, 더 많은 비민주적 요구를 하는 데 있어 북한 정권을 대담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인권 향상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정부지원 네트워크인 전미민주주의기금(NED)의 린 리 아시아 부국장도 “광범위한 북한인권 공동체에 있어 이 법은 한국 정부가 평화협상과 남북대화라는 명목으로 운동을 약화하려는 또 다른 시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조시 로긴 워싱턴포스트 기자

로긴은 이 법에 따라 NED 프로그램 중 어느 것이 삭감될지는 불분명하다고 했다. 로긴은 탈북 고위 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비판도 전했다.

태 의원은 “북한과 한국 의회가 양측간 문화 콘텐츠 이동을 금지하기 위해 손을 맞잡은 것은 한반도 분단사에서 처음”이라며 “이들은 북한 주민을 눈감게 하고 싶어 한다”고 했다. 또 “한국 정부가 평화에 전념한다고 하지만 이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라면서 미국 정부와 의회가 이 법이 문제라는 것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분명히 한다면 긍정적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긴은 실수할 때 얘기해주는 것이 좋은 친구라면서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유리한 입장에서 북한에 관여하고 싶다면 한국이 자유와 인권, 평화의 동력을 훼손하지 않도록 권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