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청와대에서 남영신 신임 육군참모총장의 보직신고를 받은 뒤 삼정검에 수치를 달아주고 있다. 국가원수이자 국군통수권자로서 남 총장에게 육군의 군정권을 부여한 것이다./연합뉴스

육군 부사관들이 현직 참모총장을 대상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는 일이 발생했다. 창군 이래 초유의 일이다. 16일 인권위에 따르면 육군 주임원사 일부는 지난해 12월 인권위에 남영신 총장이 “장교들이 부사관에게 반말을 해도 된다”고 발언한 것이 자신들의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진정을 냈다.

육군에 따르면, 남 총장은 지난해 12월 21일 주임원사들과의 화상 회의에서 “나이로 생활하는 군대는 아무데도 없다”며 “나이 어린 장교가 나이 많은 부사관에게 반말로 명령을 지시했을 때 왜 반말로 하냐고 접근하는 것은 군대 문화에 있어서는 안 된다. 장교가 부사관에게 존칭 쓰는 문화, 그것은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러한 총장의 지침이 각급 부대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일부 주임원사들은 총장의 이 발언을 자신들의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육군 관계자는 남 총장 발언에 대해 “임무 수행을 하며 나이를 먼저 내세우기보다 계급을 존중하고 지시를 이행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라며 “반말을 당연하게 여기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남 총장은 최근 각급 부대에서 부사관들이 장교를 집단 성추행하거나 명령 불복종을 하는 등 하극상이 잇따르는 상황을 우려하며 해당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5월 육군 모 부대에선 중사 1명과 하사 3명이 나이 어린 남성 장교를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또 최근엔 국방부 군사경찰대대에서 나이 많은 남성 부사관들이 자기들보다 어린 여군 장교 등에게 성희롱 등을 했다는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군 관계자는 “최근 일부 부사관들이 장교들에게 경례도 하지 않는 등 군 기강이 땅에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일부 부사관들은 초급 장교 지시를 대놓고 무시하거나 전화를 받지 않는 등 사례도 있다. 몇몇 부대에선 초급 장교들을 대상으로 아예 “부사관을 ‘~님’이라고 호칭하라”는 교육까지 실시해 기강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군의 장교단·부사관단 갈등은 사실 뿌리가 깊다. 한 부대에서 수십 년 동안 근무하는 부사관들은 부대의 터줏대감이나 다름없다. 2~3년 뒤 전역하거나 인사 이동할 초급 장교들을 상관으로 대우하지 않는 경우도 적잖다. 일부 부대엔 최근까지도 ‘신임 소위 길들이기' 같은 악습도 있었다. 부사관들 역시 부대 관리와 장비 운용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데도, 일부 초급 장교들이 지나치게 고압적·권위적 태도를 취하거나 반말을 하는 데 대해 반발심을 품기도 했다. 2001년 하사관(下士官) 명칭을 부사관(副士官)으로 개칭하고, 장교단·부사관단의 계급 상하관계를 인정하되 상호 존중하게 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그럼에도 육군의 최선임자인 참모총장을 대상으로 부사관들이 ‘인권위 진정’을 하는 초유의 사태에 육군 안팎에선 “부사관들이 이젠 참모총장까지 길들이려는 것 아니냐” “총장 망신주기를 목적으로 한 인권위 진정 아니냐”는 개탄도 나오고 있다. 일선 장교들도 “가뜩이나 부사관들의 텃세가 심한데 기가 막히다” “아예 부사관을 상관으로 모셔야 할 판” 등 반응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