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부사관들이 지난해 말 ‘참모총장이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은 것은 창군 이래 초유 사건이다. 이들은 남영신 총장이 ‘장교들의 반말 지시가 당연하다’는 취지로 발언을 한 것이 자신들의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서욱 국방부 장관은 “장교·부사관 관계를 재정립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18일 알려졌다. 장관이 지휘권까지 행사할 만큼 일선 부대 장교단·부사관단 갈등이 심각한 것인지에 대해 군 안팎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지난해 3월, 육군 모 부대의 남성 부사관 4명이 남성 중위를 집단 폭행하고 성추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지난 7일 군사법원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3년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상관(上官)인 피해자에게 장난을 친다는 이유로 달아나지 못하게 하고 추행함으로써 지휘 체계를 문란하게 해 죄질이 좋지 않다”고 했다. 지난해 11월엔 국방부 소속 모 부대 부사관들이 ‘소대장급과는 통화하지 않는다’며 전화를 받지 않거나, 상급자인 여군 대위에게 성희롱성 발언을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나이로 생활하는 군대는 없다”는 남 총장 발언은 이 같은 ‘하극상’을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부사관들은 “일부 사례를 부풀려 마치 모든 부사관들이 장교를 무시하는 것처럼 생각해선 안 된다”고 했다. 군 관계자는 “대부분 전방 부대에선 장교·부사관 간의 ‘상호 존중’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다”며 “장년 부사관들도 청년 장교를 상관으로 대우하고 있다”고 했다. 일부 후방 부대에 남아 있는 ‘장교 길들이기’나 ‘텃세’ 같은 악습을 군 전체 상황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20대 신임 소위가 50대 부사관에게 ‘자네가 주임원사인가’라고 말한다는 지적에 군 관계자는 “어떤 장교가 아버지뻘 부사관에게 함부로 반말을 하겠느냐”며 “인터넷 개그에 불과한 얘기”라고 했다.
장교가 부사관에게 인사권을 악용해 ‘갑질’을 한다는 지적도 있다. 2019년엔 육군 모 부대 20대 여군 대위가 50대 남성 원사에게 ‘춤을 추라’는 등 강요를 하고 40대 남성 중사를 폭행했다는 신고가 들어와 군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2015년엔 해군 중령이 여군 부사관 성폭행 미수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2018년 인권위가 전군 부사관 11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남성 부사관의 33.3%, 여성 부사관의 44.4%가 ‘부사관이라는 이유로 장교에게 차별을 받은 적 있다’고 응답했다. ‘하사라는 이유로 초임 소위들에게 독신자 숙소를 내줘야 했다’ ‘계급이 낮다고 군 콘도 이용에 불이익을 겪는다’ 등 사례도 있었다.
서욱 장관은 지난 17일 인권위 진정 관련 보고를 받은 뒤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고 육·해·공군 참모총장에게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도 인사복지실 등을 중심으로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군 안팎에선 국방부 훈령 등에 장교와 부사관의 계급 차이를 확실히 명문화하고, ‘복종·존중 의무’ 등을 부가하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또 장교가 부사관을 ‘님’이라고 호칭하지 않는 대신 반말은 금지하고, 부사관단엔 부대통찰관(원사)·행정안전관(상사) 등 계급별 직책을 명확히 부여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한편 육군은 남영신 총장을 인권위에 진정한 부사관들에 대한 감찰·징계 등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당초 군 안팎에선 해당 부사관들의 행위가 군인복무기본법 27조(군기문란 등의 행위 금지) ‘상급자·하급자나 동료를 음해하거나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행위’, 31조(집단행위의 금지) ‘군무와 관련된 고충사항을 집단으로 진정 또는 서명하는 행위’ 등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살펴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육군 법무실은 “상위법인 헌법이 군인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으므로 하위법을 근거로 조사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육군 관계자는 “부사관들에 대한 감찰·징계를 공식 검토한 바 없다”고 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성우회·재향군인회 등은 군 기강 문제를 들어 국방부와 군에 항의 전화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