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왼쪽>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선DB·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신임 외교부 장관 후보자로 정의용 대통령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을 지명함에 따라 현 정부 초대 외교부 장관인 강경화 장관은 3년 7개월 만에 물러나게 됐다.

당초 정치권과 관가에서 강 장관은 이번 개각 대상으로 거론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최장수 국무위원인 강 장관이 앞서 지난달 4일 개각에서도 살아남자 외교부 안팎에선 ‘강 장관이 5년 임기를 채울 것’이란 의미의 ‘오(五)경화’ ‘K5(K는 강 장관 성의 영문 머리글자)’라는 말도 돌았다. 이처럼 예상을 깨고 강 장관이 교체된 것을 두고 외교가에선 “지난달 북한 김여정의 비난 담화가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은 지난달 9일 담화에서 강 장관을 콕 짚어 “북남 관계에 더더욱 스산한 냉기를 불어오고 싶어 몸살을 앓는다”며 “두고 두고 기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여정은 강 장관이 지난달 5일 바레인에서 열린 국제 회의 때 “코로나로 인한 도전이 북한을 더욱 북한답게 만들었다”고 말한 것을 트집 잡았다. 코로나 국면에서 극심해진 북한 사회의 폐쇄성을 지적한 이 말에 대해 김여정은 “주제넘은 망언”이라며 “정확히 계산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에서 ‘계산한다’는 말은 ‘잘잘못을 가려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뜻이다.

지난해 6월에는 ‘김여정 담화’의 여파 속에 통일·국방장관이 잇따라 물러났다.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은 김여정의 6월 담화 2주 뒤 “남북 관계 악화의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를 밝혔고, 정경두 전 국방부 장관도 같은 달 김여정의 지휘를 받는 김영철 당중앙위 부위원장의 비난 담화 2개월여 만에 물러났다.

하지만 “강 장관의 입지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란 관측에 더 무게가 실렸다. 강 장관이 문재인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김여정이 문재인 정부의 인사정책을 좌지우지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강 장관을 바로 교체할 가능성을 작게 봤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교롭게도 강 장관이 김여정 담화 한 달여 만에 교체되자 관가에선 ‘김여정에게 찍히면 무사하기 어렵다'는 의미의 ‘김여정 데스노트’란 말이 돌기 시작했다. 여권 관계자는 “코로나 방역과 백신 등을 고리로 남북 협력 재개를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로선 김여정이 실명 비난한 강 장관의 거취를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앞서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11일 “김여정에게 찍히면 문재인 정권에게도 찍혀 철저히 외톨이가 된다는 걸 강경화 외교부 장관 사례가 보여주고 있다”며 김여정에 찍히면 문재인 정권에도 찍힌다는 의미로 ‘김찍,문찍’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