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륙 훈련을 하고 있는 한·미 연합군./조선일보DB

국방부와 군(軍)은 5일 “한·미 연합훈련계획은 한·미 연합 2급 비밀”이라고 밝혔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훈련 계획의 비밀 등급 등과 관련한 국민의힘 윤주경 의원 서면 질의에 “연합훈련 계획은 한·미가 협의해야 하는 사안”이라며 이같이 답했다. 연합 2급 비밀은 한국 정부가 ‘누설될 경우 국가 안전 보장에 현저한 위험을 끼칠 것으로 명백히 인정되는 가치의 비밀’이라는 군사기밀보호법 기준을 준용, 미국과 공동으로 설정하는 비밀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연합훈련 문제를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달 신년 기자회견 발언은 명백한 ‘안보 자해적 발상'이 된다. 윤 의원은 “방어 훈련 내용을 공격 주체인 북한에 알려주는 꼴”이라고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당대회에서 남북 관계 개선의 전제 조건으로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한 이후 훈련 여부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정부는 남북 관계 차원서 훈련 축소·연기도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은 훈련 여부를 ‘동맹의 시험대'로 보고 있다. 미 의회 싱크탱크인 의회조사국(CRS)은 지난 2일 보고서에서 ‘북한과 연합훈련 협의할 수 있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이 “미국의 정책과 어긋날 수 있다”며 “문 대통령은 북한에 더 많이 양보하는 입장을 지지해 트럼프 전 행정부와 주기적으로 긴장 관계가 조성됐다. 이런 움직임은 바이든 행정부와도 계속될 것 같다”고 했다. 미 평화연구소 프랭크 엄 선임연구원은 “문 대통령 발언이 훈련 지속 여부 등 한·미 연합훈련 자체에 대한 논의라면 문제가 심각할 수 있다”고 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초부터 한·미가 연합훈련 문제로 얼굴을 붉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이덕훈 기자

이런 우려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문 대통령 발언이 훈련 여부나 세부 계획을 북한과 협의하겠다는 의미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방어적 목적의 연합훈련에 대해 일방적으로 반발만 하니, 북한의 입장이 무엇인지 대화의 장을 마련해 한번 들어보자는 취지”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 고위 인사들은 최근 연합훈련 축소·연기 등을 시사하는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5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코로나 위기 때문에 훈련 축소가 불가피해 보인다’는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 질의에 “그렇다”고 했다. 이 후보자는 “적절한 수준의 연합훈련은 계속 실시돼야 한다”면서도 “다만, 대규모 연합훈련은 한반도 상황에 여러가지 함의가 있기 때문에 미측과도 아주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도 지난 4일 “연합훈련이 진행된다면 반발과 긴장 유발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이라며 “남북 갈등을 점화하는 방식보다는 좀 더 유연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훈련 주무 부처인 국방부가 “연합훈련은 계획대로 시행할 준비를 하고 있다”(서욱 장관)는 공식 입장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어떤 식으로든 훈련 규모, 시기 등이 조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주한미군은 물론 미국 본토에서도 ‘과연 한국이 훈련 의지가 있긴 한 것이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은 본지 통화에서 “군은 이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지원하기 위해 연합훈련의 실기동훈련(FTX)을 중지했다”며 “시뮬레이션 중심의 기본적인 지휘소 훈련(CPX)만 남은 상황인데, 이마저도 축소한다면 걱정스럽다”고 했다.